부산영화제 개막작 <산사나무 아래>는 순수한 사랑의 가치를 절실히, 그리고 집요하게 신봉한다. 영화가 믿는 순수함은 정확해 말해 순진무구의 세계다. 남자와 여자는 징검다리를 건널 때, 차마 손을 잡지 못하고 나뭇가지를 사이에 둔다. 남녀가 같이 눕기만 해도 아기가 생기는 줄 아는 여자는 남자를 만난 지 1년이 넘도록 그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조차 모른다. 급기야 남자는 아직 어린 여자를 위해 맹세한다. “난 평생 기다릴 수 있어.” 1970년대의 중국, 문화혁명시대의 어느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삼지만, 사실상 이들의 첫사랑은 아예 다른 시공간에 놓여있다. 믿고 싶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 그럼에도 영화 속의 두 배우, 두오샤오와 저우동위는 이들의 사랑을 무결함 자체로 그려냈다.
두오샤오가 연기한 라오산은 여자를 위해 키다리 아저씨를 자처하는 남자다. 두오샤오의 훤칠한 키와 건실한 얼굴은 라오산을 매력적인 남자 이전에, 믿을 수 있는 남자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오로지 “헌신적인 사랑이 뭔가를 고민”하며 연기했다. “나였어도 라오산처럼 여자를 지켜주려 했을 것 같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겠다는 마음은 어떤 남자나 갖고 있는 것 아닌가.” 라오산의 연인 징치우를 맡은 저우동위 또한 “나 역시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우동위는 얼굴에 깃든 표정만으로도 영화의 청정도를 높인다. 장이모 감독이 저우동위를 캐스팅한 이유 또한 “70년대를 대표할 청순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고. 건실함과 청순함, 영화 속 두 남녀가 꼭 지녀야할 매력이었을 것이다.
<산사나무 아래>는 이들의 첫 스크린 데뷔작이다. 가라테 선수였던 두오샤오는 캐나다에서 열린 한 연기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이후 몇 편의 연극과 독립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다. 저우동위는 난징예술학교를 다니며 무용학교 진학을 준비하다가 발탁됐다. 첫 영화가 장이모의 작품이니 엄청난 행운일 것이다. 저우동위는 벌써 제2의 장쯔이라는 수식어가 붙여졌을 정도. 두오샤오는 “감사하다는 것 밖에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했고, 저우동위는 “장이모 감독에게 사람의 도리와 연기자의 도리를 모두 지켜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이모에게도 두 배우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을 것이다. 장이모의 전작이 화려한 색감의 미술로 빼곡히 채워진 영화였다면, <산사나무 아래>에서는 두오샤오와 저우동위의 얼굴이 그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꿈에 가까운 사랑조차 믿게 만드는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