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르 이오셀리아니가 1962년에 만든 단편인 <4월>은 전통을 옹호한다며 소비에트 당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는데, 이미 이때부터 이 그루지야 출신의 영화감독은 자신의 고향에서 정상적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게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후에 만든 그의 영화들은 어둡다거나 불손하다는 등의 이유로 당국과 마찰을 빚었다. 결국 1984년 이후로 이오셀리아니의 영화적 근거지는 파리가 되었다. 이런 역정으로 인해 우리는 그의 영화 세계를 쉽사리 두 시기로 나누곤 한다. 물론 완전한 단절을 보여주지는 않는 이 두 시기를 가지고 영화평론가 조너선 롬니는 이오셀리아니가 많은 사람들에게 현재 점하고 있는 위치를 적절하게 밝혀낸 바 있다. 그루지야 시대의 이오셀리아니가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영화감독들 가운데 하나라면, 파리 시대의 그는 저평가되고 있는 감독이라고 말이다.
(특히 유럽의) 소수 비평가들이 표하는 열렬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낯설게 받아들여지는 영화감독이 이오셀리아니라는 말일 것인데, 사실 그의 영화 자체도 다소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준거점으로 종종 함께 거론되는 다른 영화감독이 자크 타티이다. 마치 무성영화인 듯 대사를 적게 쓰면서 서서히 코믹함을 드러내는 상황을 짐짓 무심하다는 태도로 관찰하는 순간들로 구성된 이오셀리아니의 영화들을 보면 타티를 끌어들여 비교하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 하지만 이오셀리아니 자신은 타티와의 유사함보다는 차이를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특히 영화 구축의 주요한 기반이 되는 것이 타티에게는 윌로씨라는 분신이라면 자기에게는 구조라는 점을 적시한다. <달의 애인들>(1984)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모양새를 드러내는 이오셀리아니적 영화는, 한둘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그 안에 들어오게 해 그들이 서로 스쳐지나가거나 이런 저런 상호작용을 하고 관계를 맺는 단편(斷片)들을 자재 삼아 만들어진다. 이오셀리아니에 따르면, 그런 식의 영화는 카펫을 짜거나 음악을 작곡하는 것처럼 구축되는 것으로,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마침내 전체 구조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영화 속 세계를 항해하는 기술을 터득할 것을 요구하는 이런 식의 구조 속에 이오셀리아니는 자기가 바라본 세계의 모습들을 담는다. 이제 에덴은 완전히 위험에 처해 있고 현대화의 되돌릴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더 많이 갖고자 하고 더 많이 추구하고자 쓸데없는 노력을 기울이는 세상이 그것이다.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계급 사람들의 삶을 살고자 하는 <안녕, 나의 집>(1999)의 두 청년이 보여주듯, 그 어떤 것도 영속적이지 않고 단지 잠정적일 뿐이며 따라서 유동(流動)이 작동의 주요 원리인 것이 이오셀리아니가 인식하는 세상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서 그저 냉소적일 것만 같은 이오셀리아니의 시선에 따뜻함이 깃들어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는 점이다. <안녕, 나의 집>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들 가운데 하나는 자기 집에서 버림받은 성주(城主)와 부랑자 노인이 술과 노래로 교유를 쌓는 것이다. 술(이오셀리아니 영화의 지속적인 모티프인)과 담배와 잡담을 통해 교감하려 할 때, 다른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라도 친숙한 바보로서 동등해진다. <가을의 정원>(2006)에서 이오셀리아니가 그린 것은 권력과 부로부터 벗어나자 오히려 ‘삶’의 즐거움을 찾는 주인공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오셀리아니는 우리에게 사랑하고 즐거움을 찾는 삶을 추구하도록, 그리고 그런 단순한 기술을 배우도록 권장하는 현명한 영화 철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