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스페인영화는 현재 정치적으로 무력하고, 사회적으로 그릇되며, 지성적으로 무가치하고, 미학적으로 부재하며, 산업적으로 무능력하다.” 1955년 5월 살라망카에 모인 스페인의 영화인들은 당대 스페인영화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이처럼 가차없는 비난을 담은 성명서를 채택했다. 후일 독일에서 발표되어 잘 알려질 오버하우젠 선언에 비교될 만한 이 ‘살라망카 담화’에서 감지되는 것은 어느 쪽이든 꽉 막혀 있는 영화적 상황에 대한 영화인들의 자성(自省)과 자문의 목소리이다. 더이상은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부담에 짓눌려버린 영화만 만들 수 없다는 각성, 여기서부터 이미 새로운 영화에 대한 요구는 표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스페인도 1960년대 중반쯤이 되면 당시 세계적인 흐름에 뒤지지 않고 ‘새로운 영화’(Nuevo cine espanol)를 만들어낸다. 그 흐름을 이뤄낸 많은 이들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이름이 카를로스 사우라일 것이다. 새로운 영화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영화를 만들었고 또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영화적인 거울에 스페인의 사회적·문화적 초상을 비춰낸 영화를 만들어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둠으로써 국내외적으로 가장 유명한 스페인 감독이 된 인물이 사우라이니까 말이다.
네오리얼리즘적 데뷔작 <부랑자들>
이제 사우라의 데뷔작 <부랑자들>(1960)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잠깐 앞서 거론했던 살라망카 담화로 돌아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거기에서는 스페인영화의 문제들 가운데 심각한 것으로 “우리 시대가 인간의 모든 창작물에 대해 요구하는 증인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영화사가들이 지적하기를, 엄혹한 정치적 상황에 순응한 것이든 냉정한 경제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든 여하튼 이전까지의 스페인영화에는 단지 ‘스크린 위의 세계’만이 담겼던 데 반해, 1950년대부터는 현실과 접촉하려는 용감한 열망을 가진 영화들이 계속해서 나왔다는 게 당시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한다. 실제로 살라망카에 모인 영화인들이 영화적 모범으로 삼은 것도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이었다(살라망카 담화의 문안을 실제 작성한 사람은 후안 안토니오 바르뎀으로, 그는 스페인에서 사회드라마의 토대를 마련한 감독으로 기억된다. 부산영화제에서는 그의 작품 <자전거 주자의 죽음>(1955)이 상영된다). 이런 맥락에서 사우라의 <부랑자들> 역시 네오 리얼리즘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영화로 이해되곤 했다.
사실 어떤 면에서든 결코 ‘청결한’ 환경 속에 있지 않다고 해야 할 청년들의 삶의 편린들을 다룬 <부랑자>는 네오 리얼리즘적인 작품이라고 거론될 수 있는 영화이긴 하다.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기용해 그들과 그들이 처한 누추한 공간을 다큐멘터리적 질감이 나는 시선으로 스크린에 담았다는 점에서 <부랑자들>은 네오 리얼리즘과 결부될 지점을 가진 작품인 것이다. 하지만 사우라 자신은 네오 리얼리즘이 너무도 감상적이라고 생각해왔다면서 그것은 자신이 소속되어야 할 영화적 공간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럴 때 우리는 이 영화의 비교점을 당대의 다른 영화, 특히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어떤 영화에서 찾아보도록 재고하게 된다. <부랑자들>은 갱스터나 10대 반항 영화 같은 할리우드적 컨벤션을 가져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물들이 패배하는 것을 지켜보며 그 대중영화적 틀이 얼마나 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도덕적 개입을 거부하는 시선과 단편화한 구조를 채택한다. 그런 점에서 <부랑자들>은 확실히 만듦새나 영화사적 위치에서도 장 뤽 고다르나 프랑수아 트뤼포의 당대 작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은유영화’로 불렸던 그의 작품들
<부랑자들>은 해외에서는 격찬을 받았지만 스페인 내 많은 평자들에게는 그 낯선 형식과 황량한 시선 때문에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영화의 이 어두운 시선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공개되기 전 검열의 높은 장벽을 넘는 데에도 장애물로 작용했다. 사우라 스스로 완성시키기까지 가장 어려웠다고 토로하는 이 영화는 제작의 거의 모든 단계에서 검열의 눈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예컨대 대본은 네번 정도 바뀌어서 초안과는 적잖이 달라져버렸고 최종 편집에선 10분 정도가 잘려나갔다고 한다. 이런 엄중한 검열은 사실 <부랑자들>에만 해당되는 한시적 족쇄가 아니었고 오랜 프랑코 치하 스페인 영화사를 관통하는 관행이라고 할 만큼 지속적인 것이었다. 요컨대, 프랑코 정권 아래의 영화감독들이 정권이나 종교가 지닌 신성불가침의 가치에 의문을 표하거나 그것에 반대하는 영화를 만들기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우라는 ‘침묵’이 강요되던 시기에 발언을 하려 노력했던, 그래서 용감한 지성을 발휘했던 시네아스트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루이스 보라우 같은 다른 스페인 감독과 함께) ‘프랑코의 아이’라 불렸던 사우라는 비극의 역사를 보고 목격하며 각인된 충격과 내적 상처를 스크린 위로 옮겨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질식할 듯한 분위기 속에서 직접적인 표출의 방식으로 이뤄질 순 없었다. 작품은 아둔한 관객(검열관?)은 눈치채지 못하도록 암시와 풍자적 요소를 교묘히 숨기고, 그래서 오히려 묘한 매력을 풍길 수 있는 방식으로 축조되어야 했다. 이처럼 가장 표층적인 막 뒤에서 은밀하게 내전이 남긴 상처, 당대 정치적·종교적·도덕적 억압을 이야기하기에 사우라의 영화는 종종 ‘은유영화’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한다.
<사냥>(1966)은 그 훌륭한 실례가 되는 영화이다. 영화는 토끼 사냥을 하러 예전에 전장이었던 곳을 찾아온 세 중년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죄의식, 불길함, 신경증이 모호하게 점점 퍼져가는 분위기 속에서 그들의 행위는, 영화 속 대사에서 최상의 사냥이라고 했던 인간 사냥으로 옮겨간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인물들이 겪은 과거의 비극에 대해 확실한 언질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빼어난 촬영과 편집으로 인물들만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우리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오면서 스페인 내전이 남겨놓은 상처와 그 이후의 도덕적 진공 상태에 대한 논평을 영화적으로 느끼고 ‘경험’하게 만든다. 사우라의 또 다른 대표작인 <까마귀 기르기>(1975) 역시 은유영화의 범주에 속할 터이지만, 정치적 레퍼런스와 메시지의 측면에서라면 <사냥>과 비교해 좀더 가시적인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평자에 따르면 “사우라가 얼마나 프랑코의 죽음을 비밀리에 축하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프랑코는 1975년에 사망했다)인 이 영화는 프랑코의 대리자인 듯한 파시스트 장교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영화는 그가 아니라 그의 어린 딸인 아나를 중심에 놓고 펼쳐진다. 관 속에 놓인 아버지에게 키스하기를 거부하는 이 딸은 아버지가 죽기 직전 친구의 아내와 부정한 관계를 맺는 것을 목격했다. 어쩌면 아버지의 죽음을 유발한 것은 아나인지도 모른다. 어떤 표지판 없이 현재 속으로 과거가 들어오는 이 영화에서 아나는 어머니의 유령을 본다. 그 어머니는 결혼 생활을 하면서 꿈도 포기하고 고통만 겪다가 죽음을 당한 여자이다. 그녀의 편인 아나는 그녀의 죽음을 야기한 야비하고 폭력적인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아나는 과거의 침윤을 벗어날 수 없는 새로운 세대이자 폭압적인 과거에 복수를 하고 싶어하는 반항적인 새로운 세대에 속하는 인물이다. 영화는 이 위에 성인이 된 아나의 시점을 보탬으로써 현재는 역사의 침입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앞으로 대략 20년 뒤에야 ‘성인’이 될 스페인은 어떤 모습일 것인가의 문제도 질문한다.
스페인의 문화 유산에 대한 애정
사우라의 영화는 스페인에 민주주의가 찾아온 이후로 이전과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이전했다. 80년대 이후 사우라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카르멘>(1983)이나 <보르도의 고야>(1999) 같은 영화들에서 볼 수 있듯이, 스페인의 문화 유산에 대한 애정이다. 누군가 이야기하듯이 여하튼 매혹적인 면이 있는 이 영화들이 사우라가 피로해진 기색을 보여준 것들인지는 평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여하튼 그에 대해 평가하면서 적절히 인용할 수 있는 것은, 스페인영화에 대한 저서를 쓴 긴 에드워즈의 다음과 같은 구절일 것이다. “스페인영화의 강점은 그 스페인적인 것에 있다. 스페인영화는 스페인의 이슈를 이야기하고 스페인의 전통을 활용하며 무엇보다도 스페인적인 스타일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야말로 현재까지의 사우라 영화세계에 어울리는 말 같다. 스페인의 상황과 대면해서 스페인의 문제를 다뤄왔고 현재에는 스페인의 유산을 영화적으로 이해하고 보전하려는 영화적 시도를 해온 영화감독, 사우라는 그런 시네아스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