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영화제의 VVIP예요” 부산관계자의 말은 틀렸다. 목소리와 마스크만으로도 이미 다른 배우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할리우드의 별 윌렘 데포. 직접 만난 그는 VIP 대접은 안중에 없이 소박한 매너를 보여준다. 때론 심각하고 때론 흥미롭게 작품과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그에게 영화 속 강한 이미지도 곧장 희석된다. 이번 부산방문은 부인인 지아다 콜라그란데 감독이 연출한 영화 <우먼>의 주연배우로서다. 한 여자를 광기로 몰아넣는 베일에 쌓인 소설가 막스로 이중적인 모습은 이전까지의 윌렘 데포와 또 다른 마스크다. (동석한 지아다 콜라그란데 감독의 인터뷰는 12일자 데일리에 게재됩니다.)
-올리버 스톤, 마틴 스코세지 등 거장들과의 작업에 익숙하다. 다소 규모가 적은 <우먼>의 출연은 의외다.
=내 선택 기준은 항상 변한다. 그러면서도 꾸준하게 바라는 점이 있다. 난 개인적 영화를 다루는 감독, 강한 성격의 감독을 선호한다. 지아다 감독과의 작업이 흥미로운 것도 그녀가 고전적 접근방식의 영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보통 젊은 감독들이 소재주의에 빠지거나, 흥밋거리에 집착하는 것과는 한참 다르다. 난 그런 영화들이 영화의 마술, 영화의 힘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이슈를 넘어서 좀 더 개인적인 문제로 접근할 수 있는 동력이 있어야 한다.
-과거 <플래툰>의 성공 이후 행보 역시 의외지만,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당시 무수한 콜을 거절하고, 마틴 스코세지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같은 논란의 영화를 선택한 모험주의자이기도 했다.
=내게 중요한 건 얼마나 흥미로운가다. 또 두려움도 필요하다. 난 모험심이 강하지만, 자신이 없고 두려움도 많이 느낀다. 그런데 뭘 모르고 도전한다는 것이 때로 최고의 성과를 불러오는 것 같다. 성공을 원한다거나, 자신의 커리어를 개발한다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런 걸 따진다면 배우로 생활 할 수가 없다. 난 항상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흥미로운 일에 집중하고 싶다.
-<우먼>에서 지아다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서로 너무 잘 알아서 한편으론 더 조심스럽지 않았나.
=지아다 감독이 영화를 구상할 때부터 계속 같이 했다. 시나리오를 보고 이 영화에 참여할지 말지 정한 게 아니라, 영화가 개발되어 가는 과정을 직접 지켜봤다. 시나리오는 감독이 쓰는 거지만, 항상 내게 조언을 구했다. 영화 전반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분장이 필요 없는 배우다’란 말이 있을 정도로, 강한 마스크로 주목받았다. 할리우드에 새로운 악인의 이미지를 심어 준 배우다. 그 이미지가 때론 장점으로, 또 때론 족쇄로 작용했을 것 같다.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이미지를 스스로는 거의 느끼지 않는다. 그런 고정된 이미지는 어떤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대중영화에서 보여진 것 때문에 굳어진 고정관념일 수 있다. 난 그 이미지를 이용하지도 않고, 그 이미지가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그 이미지를 내가 안고 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길 원하지만, 내가 원하는 반응을 다 얻는 건 힘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하나하나의 작품마다 새롭게 임하는 것. 많은 작품을 했지만 늘 그런 마음이다.
-매 해 왕성히 작품에 출연한다. 차기작도 궁금하다.
=호주 근처의 타지메니아에서 촬영하는 호주영화 <헌터>에 주연으로 출연한다. 또 다른 영화로 2012년 개봉할 SF <존 카터 오브 마스>가 있다. <월-E> <니모를 찾아서>등을 연출한 앤드류 스탠튼 감독의 작품으로 특수효과가 많아서 좀 걸릴 것 같다. 많이들 아시지만, 영화 외에 연극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뉴욕에서 로버트 윌슨의 작품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