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한 남자의 인생을 보여주는 영화 <영원>
2010-10-09
글 : 이현경 (영화평론가)

<영원> Eternity 시바로지 콩사쿤/ 태국/ 2010년/ 105분/ 뉴 커런츠

한 남자의 인생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유령의 관점으로 시작한다. 시골길을 좌, 우로 번갈아 지나가는 남자의 동선을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오프닝은 관객으로 하여금 천천히 그를 관찰하게 만든다. 남자가 빠져나간 텅 빈 공간을 참을성 있게 응시하는 카메라처럼 관객은 그의 다음 행동을 주시하게 된다. 한 그루의 나무 앞에서 울던 남자는 폐허가 된 옛 집으로 들어가 물건들을 하나씩 살핀다. 그 다음 남자는 나룻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청둥오리 떼가 강위로 날아간다. 이 남자가 이미 죽은 사람임을 미처 알지 못하고 여기까지 보았다 해도 형언할 수 없이 쓸쓸하고 비통한 정서는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다음부터 영화는 이 남자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길게 보여준다. 결혼식을 위해 연인 코이와 고향집에 머물렀던 며칠이 위의 일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다. 위에게 이 시간은 영원이다. <영원>은 앞과 뒤에 짧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배치하고 나머지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행복한 연인을 보여준다. 위와 코이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별다를 것 없는 사소한 일상으로 채워져 있지만 매 순간이 사랑스럽다. 취는 샤워하는 코이를 위해 문밖에 쪼그려 앉아기다리고, 코이의 베개 밑에 가만히 수영복을 넣어둔다. 가족들이 모여 밥을 먹거나 커다란 모기장 아래 모여 잠을 자는 모습에서도 둘의 사랑이 느껴진다. 잠에서 깬 위와 코이가 모기장을 사이에 두고 나지막이 대화를 나눌 때 둘의 얼굴에 미소가 끊임없이 떠오른다. 이 영화에서 자연은 인물 이상의 몫을 한다. 둘이서 미래를 이야기하는 넓은 호숫가나 운명을 점치러 들른 사원처럼 영화 속 공간 가득 태국의 정서가 묻어난다. 영원한 삶도 영원한 사랑도 존재할 수 없지만 기억 속에서 어떤 한 시절은 영원으로 고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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