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순수의 시선, 거장의 기원을 찾아서
2010-10-11
‘한국영화의 고고학’ 섹션에서 상영된 신상옥 감독의 <꿈>이 갖는 영화사적 의미

신상옥 감독의 <꿈>이 ‘한국영화의 고고학’ 섹션에서 상영됐다. ‘조신설화’를 바탕으로 한 <꿈>은 현존하는 필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복원된 흑백화면은 한국영화에 있어 초기의 무성영화 영향력을 짐작케 하는 역사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영화다. <꿈>이 갖는 영화사적 의미를 되짚어 본다.

948년 최인규에게서 독립한 신상옥은 1952년, 전쟁이라는 어려움 속에서 천신만고 끝에 데뷔작 <악야>를 피난지 부산에서 개봉했다. 두 번째로 다큐멘터리 <코리아>를 제작했으나, 이 역시 난산이었다. 촬영 과정에서 인연이 된 최은희와의 만남은 연애로 이어졌고, 이는 한국영화계 최대의 스캔들을 낳았다. 선배의 부인을 ‘가로챈’ 신상옥에 대한 당시 영화계의 시선은 싸늘했고 영화인들의 작업 거부로 후반작업을 해줄 곳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코리아>는 한국의 명승지를 알리는 다큐멘터리영화였지만, 그 속에는 픽션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신상옥은 한국적인 미에 눈을 떴다. <악야>와 <코리아>의 리얼리즘으로부터의 전환에 대해 그는, 이미 미술학도 시절부터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던 탐미적인 지향이 발현된 결과라 말한다. 신라시대 설화 ‘조신몽’과 이광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꿈>은 이 같은 전환의 첫 번째 산물이다. 지체 높은 태수의 딸 달례를 간절히 사모하던 조신이 그녀와 함께 사랑의 도피행각을 하나, 결국 그녀의 정혼자 모례 화랑에게 발각되어 죽기 직전 꿈에서 깨어난다는 내용인데, 이 영화는 인생은 꿈이고 꿈은 인생이라는 장자의 호접몽 인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실제 만들어진 영화 <꿈>은 그의 호언만큼 탐미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네오리얼리즘의 흔적이 훨씬 많이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조명의 광량이 부족해 화면의 콘트라스트나 배경의 입체감이 제대로 살지 못한 데다 편집은 억제되는 대신 롱테이크가 주로 활용되었으며, 등장인물은 최소화됐다. 이는 전후 폐허 위에서 새롭게 출발한 한국영화산업의 열악한 환경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꿈>은 1954년 제작에 들어가 1955년 1월 개봉되었다). 당시 영화인들은 그 현실로부터 오히려 새로운 미학을 찾기를 원했으니 그 모델이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이었다. 따라서 <꿈>이 보여준 탐미성과 리얼리즘의 이 기이한 착종은 당시 신상옥의 영화에 대한 입장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예술가적 지향과 당시 열악한 영화 환경이 낳은 부산물이었다.

신상옥은 평생에 한국, 북한, 미국 등에서 80편 내외의 영화를 연출했는데, <꿈>은 그 세 번째 영화이자 필름이 보존된 가장 이른 작품이다. 이르다는 것은 서툴다는 말도 된다. 이 영화에서 신상옥은 73분이라는 길지 않은 지속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라 허둥댄다. 서사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사랑의 도피행로가 10여분이나 진행되며, 원작의 풍성함을 담보했던 조신의 내면 갈등은 거의 형상화되지 못한다. 그는 아직 인물의 내면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서사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감독임과 동시에 견습생이었다. 그러나 거장의 초기작은 완성도의 여부와 관계없이 그 나름의 가치를 가진다. 그 속에는 이후에 발현될 그 감독의 세계관과 예술관이 축약되어 있고, 때로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민이 비교적 솔직하게 녹아들어 있기도 한다. 예컨대 <꿈>에서 그려지는 금지된 사랑과 모든 것을 버린 사랑의 선택, 그 막중한 책임감과 두려움, 그리하여 마음 한쪽에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라는 조신의 내면은 당시 최은희와의 스캔들로 영화계에서 매장의 위기를 맞은, 그리하여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신상옥의 내면을 형상화한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영상자료원에 근무하는 혜택 중 하나는 어느 누구보다 초기의 필름을 먼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가끔 새롭게 수집된 초기 영화를 볼 때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율리시즈의 시선>의 주인공 A가 그리스 초기 영화를 바라보던 장면을 떠올리곤 한다. A는 초기 영화라는 순수의 대상을 통해 순수의 시선을 획득한다. 초기 영화는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출발점을 돌이켜보게 해주고, 지금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열차의 도착>이 100여 년의 영화사에서 끊임없이 환기되는 것은 그 순수의 순간이 가지는 아우라 때문이리라.

조준형/ 한국영상자료원 영화사연구소 팀장 <영화제국 신필름>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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