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핑크영화 출신의 색다른 에도시대
2010-10-11
글 : 이다혜
<번개나무>의 히로키 류이치 감독

히로키 류이치 감독이 연출한 작품 제목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들. 그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바이브레이터>를 포함해 <도발적 관계:M> <바쿠시, SM 로프 마스터> 등 핑크영화 출신 감독다운 소재를 주로 다루어왔다. 여성의 욕망과 섹스,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물 <번개나무>를 연출한 일은 일종의 ‘외도’에 가까워보였다. 게다가 주연배우가 순수한 청춘의 표정을 지닌 아오이 유우와 오카다 마사키라니. <번개나무>는 숲속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성장한 소녀 라이(아오이 유우)와 도쿠가와 쇼군 히데나리의 17대손 나리미치(오카다 마사키)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에게 도깨비라고 불리던 라이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마스크를 나리미치가 벗겨낸 순간, 그녀의 등을 꼭 끌어안은 그가 “바람이 기분 좋아, 이대로 있어줘”라고 속삭인 순간, 두 사람은 함께할 수 없는 현실을 벗어나 사랑에 빠진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에 더해 출생과 성장의 비밀, 부모와 자식의 갈등이 촘촘하게 엮인다.

“기존 시대극과는 다른 느낌을 주고자 노력했다. 영주의 옷을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게 만들었고, 음악 역시 일본의 고전적인 느낌을 고집하지 않았다.” 두 남녀가 만나는 장면에서는 현대 청춘영화 같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에도시대의 분위기는 재현하지만 전통의상의 존재감이 과하지 않은 건 그래서다. 바람과 벚꽃을 연상시키는 두 남녀의 어울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특히 <모노노케 히메>처럼 등장하는 아오이 유우라는 배우의 존재의 힘이 중요했다. “아오이 유우는 신비로운 이미지의 소유자인데, 이 영화를 보면 그녀에게 이런 모습도 있구나, 놀라는 사람들이 꽤 있으리라 본다.” 히로키 류이치 감독은 일본에 돌아간 직후인 10월25일부터 나카가미 겐지의 소설을 각색한 <경멸>의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쉬지 않고 영화를 찍는 힘을 묻자,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여자?”라며 웃는다. 이거, 농담만은 아닐 거다.

사진 박승근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