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딕]
[무비딕] 감각의 쾌락으로 신의 계시에 맞서다
2010-10-12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카를로스 사우라의 <돈 조반니>에 대해 알아봅시다

Q1. 돈 조반니는 누구?
실존했던 인물은 아니다. 스페인을 중심으로 전설처럼 전해지는 허구 속의 바람둥이다. 스페인 작가 티르소 데 몰리나(Tirso de Molina)가 1630년에 출판한 책이 돈 조반니 관련 최초의 출판물로 기록된다. 14세기 스페인을 중심으로 유럽을 돌아다니며 여자들을 농락했던 남자의 이야기다. 돈 후안(Don Juan)은 스페인어 표기법이다. Don은 남자에 대한 존칭어이고, 따라서 번역하자면 후안씨 정도 된다. 그가 이탈리아에서도 맹활약(?)하니, 이탈리아식 표기법인 돈 조반니(Don Giovanni)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스페인에서는 돈 후안으로, 이탈리아에서는 돈 조반니로 불렸던 셈이다. 많은 작가들이 돈 조반니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발표했다. 몰리에르가 코미디로 쓴 적이 있고(1665), 바이런은 서사시로 남기기도 했다(1821).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1787)가 가장 유명하고, 이 작품 덕분에 돈 조반니는 불멸의 인물이 됐다.

Q2. 오페라 <돈 조반니>는 무슨 내용?
돈 조반니는 감각의 쾌락을 좇는 귀족이다. 2막으로 구성된 모차르트 오페라의 1막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리스트의 노래>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자신이 정복한 여성들의 리스트를 갖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640명, 독일에서 100명, 터키에서 91명, 그리고 스페인에서는 1003명의 여성과 놀아났다(리스트에 따르면 가장 아름다운 여성은 스페인 여성이고, 그 다음이 이탈리아 여성이다). 여성들을 농락하고 다닌 과거 때문에 결국 그는 복수를 당한다. 그런데 오페라의 마지막 장면에서, 어느 희생자 여성의 아버지 혼령이 나타나 돈 조반니에게 목숨을 살려줄 테니 참회할 것을 요구하는데, 그는 끝까지 참회를 거부한다. 자신의 삶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돈 조반니는 불구덩이에 빠져 죽는다. 만약 참회했다면 돈 조반니는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았을 것인데, 왜 그렇게 참회를 거부했을까? 이 결말이 그때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Q3. 돈 조반니와 계몽주의
돈 조반니가 참회를 거부한 부분, 이것이 결국 핵심인데, 그 당시, 그러니까 계몽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돈 조반니를 통해 인간의 자유를 경험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질서로부터, 또는 전통적인 관습의 억압으로부터 본격적으로 풀려나기 시작하는 게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인데, 돈 조반니는 시대의 초상처럼 비쳤다. 계몽주의자들에게 최대의 극복 대상은 ‘교회’로 상징되는 그 모든 것이었다. 르네상스인들이 교회의 권위에 한번 세게 도전하며, 신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세상을 만들어보자던 염원은 계몽주의를 만나 실질적으로 꽃핀다. 신의 계시가 물러나고 바야흐로 인간의 이성이 패권을 잡은 것이다. 돈 조반니가 스타가 된 데는 계몽주의라는 시대적 배경이 한몫했다. 공포를 퍼뜨리기도 했던 종교의 명령을 무시하고, 혹은 얕잡아보고 자신의 이성적 판단에 따라 인간적인 사랑을 실천했는데, 뭐가 잘못됐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당신이 종교인이라면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참회의 순간에는 잠시 망설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돈 조반니는 한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참회를 거부한다. 신과 맞짱 뜨는 겁없는 존재다. 이성의 입장에서 볼 때, 종교의 명령, 사후 세계의 심판은 없다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종교 끝, 이성 출발인 것이다.

Q4. 돈 조반니와 카사노바는 무슨 관계?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의 대본은 이탈리아의 시인 로렌초 다 폰테가 썼다. 그는 유대인으로 베네치아에서 성장했고, 그곳에서 성직자 과정을 밟아 종교인이 됐다. 그런데 그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유는 오페라의 작사가로 능력을 발휘한 덕분이다. 그는 모차르트와 <피가로의 결혼> <코지 판 투테>, 그리고 <돈 조반니>의 대본을 썼고 합스부르크 황실의 궁정작곡가 살리에리의 오페라를 썼다. 그런데 그 당시에 베네치아의 시인이자, 사교계의 스타가 바로 자코모 카사노바였다. 로렌초 다 폰테는 카사노바보다 24살 어린데, 그럼에도 두 남자는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다 폰테는 카사노바의 삶에서 시대의 초상인 계몽주의의 지식인을 봤고, 카사노바의 권유에 따라 전설 같은 돈 후안의 이야기를 오페라 대본으로 만든다. 다시 말해 종교의 억압에서 자유롭고, 신의 나라를 찬양하기보다는 세속적 일상을 예술로 만들려는 카사노바를 계몽주의자의 초상으로 봤다. 그의 난봉기는 자유연애로 미화했다. 이도 연애가 공개적으로 찬양받던 계몽주의의 시대분위기 덕을 봤다. 언제 연애가 찬양받았나, 억압의 대상이기만 했지. 다 폰테는 모차르트를 설득해 드디어 오페라를 만든다. 그렇지만 내용의 불온함 때문에, <돈 조반니>는 빈에 있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극장에서 초연되지 못했고, 프라하의 극장에서 공연됐다.

Q5. 카를로스 사우라 영화의 원제목이 <나, 돈 조반니>인 까닭은?
원래 이 영화의 제목은 ‘돈 조반니’가 아니라, ‘나’라는 단어가 하나 더 들어 있다. 그러니까 마냥 돈 조반니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이 돈 조반니라고 주장하는 이야기다. 크게 세 사람이다. 먼저 허구의 인물인 돈 조반니다. 그래서 영화 속에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공연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두 번째 인물이 오페라를 만들 쯤 다 폰테의 표상이었던 카사노바다. 시인이자 문헌학자이며, 도박꾼이고 난봉꾼이다. 영화에서도 다 폰테의 친구로 나온다. 마지막으로는 오페라의 대본을 썼던 다 폰테 자신이다. 그도 카사노바 못지않은 바람둥이인데, 성직에서 파면됐던 이유도 여자를 농락했기 때문이다. 다 폰테도 카사노바처럼 세속을 아름다움으로 장식하는 데 일생을 보낸 인물이다. 천상의 세계는 무시하고, 지상을 자신의 천상으로 만들려고 했다. 따라서 사우라의 해석에 따르면 진정한 돈 조반니는 로렌초 다 폰테인 셈이다.

Q6. 영화의 주인공 로렌초 다 폰테는 어떤 사람?
다 폰테는 유럽에서 오페라 작사가로 날렸지만, 그의 후원자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조셉 2세가 죽은 뒤 백수가 된다.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갔다. 다 폰테는 프랑스어, 독어, 스페인어, 그리고 이탈리아어에 능통하다. 뉴욕에서 이탈리아어 개인교습을 하며 겨우 먹고살았다. 그런데 이때의 수업이 인연이 돼, 그는 명문 컬럼비아대학의 이탈리아어 교수가 된다. 미국에서 <돈 조반니>도 공연하고 로시니를 알리며 예술계의 거물이 됐다. 말년에는 미국 시민으로 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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