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 오늘 취재를 나온….
=그만, 거기 서! 현장을 철저히 보호해야 하니 더이상 다가오지 마세요. 여기 머리카락 하나로 모든 비밀이 다 풀릴 수가 있어요. 범죄는 흔하지만 논리는 흔하지 않은 법이니까요.
-아 네, 일단 이번 편집장 살인사건에 대한 의뢰를 수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건 이후 사무실은 더할 나위 없이 경사 분위기고 범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어쨌건 비슷한 시기에 정한석 기자가 김성훈 기자를 살해하는 일도 벌어져서 범인은 잡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먼저 궁금한 건 요즘 기자들이 다 마감이 빨라졌다고 하더군요. 화요일 아침에도 특집 마감을 한다던데 그건 분명 이상한 일입니다. 출퇴근 시간은 그대로인데 마감만 확 당겨졌다? 뭔가 냄새가 나지 않으시나요?
-전 원래 마감이 빠른 편이라 눈치채지 못했지만, 역시 날카로우시군요. 셜록 홈스보다 천년 앞선 원조 과학 탐정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군요.
=아무튼 이번에 사건을 조사하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평소 귀가 어두운 것으로 알려진 김성훈 기자가 유독 이영진 팀장의 목소리에는 아주 크게 반응했다는 거죠. 자극의 변화량과 처음 자극의 세기의 관계를 나타낸 베버의 법칙에 따르면 처음 자극의 세기가 클 때는 이후 자극의 변화가 커야 그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베버 상수가 작을수록 예민한 건데 김성훈 기자는 그 누구보다 둔감해서 베버 상수가 상당히 높습니다. 가령 사무실의 평균소음이 40데시벨 정도라면 제트기 엔진소리에 맞먹는 150데시벨 정도를 내줘야 편집장의 얘기가 김성훈 기자 자리까지 갈 수 있습니다.
-맞아요. 편집장이 야 성훈아! 성훈아! 하고 부를 때마다 사무실이 쩌렁쩌렁 울려요.
=그렇게 문석 편집장은 사무실 이사 이후 매번 혈압이 오르도록 애타게 김성훈을 불러야 했죠. 결국 그런 긴장 상태가 교감 신경을 일상적으로 자극, 축적해 죽음에 이르도록 한 겁니다. 반면 이영진 팀장은 비슷한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원격보청기로 그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었죠. 그는 이영진 팀장의 아바타였을 뿐입니다.
-아니 그럼 범인은?
=자, 모든 수수께끼는 풀렸습니다. 이번 살인사건의 범인은 김성훈 기자를 굳이 저 멀리 앉게 만든, 그러니까 이사 오면서 자리 배치를 새로이 한 이영진 팀장입니다. 이건 차기 편집장 자리를 노리고 오랜 시간을 두고 치밀하게 준비한 일이죠. 드디어 6개월 만에 결실을 맺은 거죠. 불가능한 것을 제외하고 남는 것,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그건 진실일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