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스페인 내전의 풍경을 원동력 삼아
2010-10-12
글 : 김성훈
카를로스 사우라 마스터클래스 ‘시대가 만든 거장’

“영화를 하면서 영향을 받았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10월10일 오전11시 그랜드호텔에서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마스터클래스가 한창호 영화평론가의 진행으로 열렸다.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은 데뷔작인 <부랑자들>(1961)을 비롯해 <사냥>(1965) <까마귀 기르기>(1976)등, 총40여 편의 작품을 만든 스페인 대표 영화감독으로, 프랑코 독재 치하 때 스페인의 현실을 비판하는 영화를 많이 찍은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으로 부산을 방문한 그는 젊은 참석자들을 의식해서인지 “개인적인 이야기보다 영화를 하고 있는 어린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말로 마스터클래스를 열었다.

내 영화인생에 영향을 끼친 것은 음악, 춤, 사진, 미술, 문학 등, 여러 예술 매체였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어머니가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다. 항상 집에서 피아노를 치셨다. 덕분에 태어나자마자 음악과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는 자식들이 음악의 길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하루에 12~14시간 이상을 연습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음악가 말고 어린 시절 꿈 중 하나가 플라멩코 댄서다. 20살 때 춤을 배우기 위해 유명한 플라멩코 선생님을 찾아갔다. 한번 춰보라는 말씀에 자신 있게 선보였더니 ‘그냥 다른 일 하는 게 낫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웃음) 어쩌면 내 영화에서 춤 장면이 많은 이유는 이루지 못한 꿈을 대리만족하고 싶은 욕망의 분출인지도 모른다. 미술을 공부했던 동생 덕분에 미술 작품도 많이 접하며 자랐다.

사진을 처음 시작한 것은 7살 때였다. 당시 짝사랑했던 여학생을 찍고 싶어 아버지의 카메라를 몰래 훔쳤다. 떨리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사진은 많이 흔들린 탓에 친구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사진 뒤에 ‘당신과 함께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메모를 썼고, 하트 표시도 그려서 그 친구에게 전했다. 남녀 관계가 쉬운 게 아니라는 진리를 그때 알게 됐다. (웃음) 스페인의 거장 루이스 브뉘엘 감독의 자서전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 여든 살이 돼서야 비로소 이성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 수 있게 됐다!’ 어린 시절 사진에 대한 흥미는 취미, 그리고 직업이 됐다. 출발은 공연 사진이었다. 플라멩코 공연을 찍던 중, 무용수들의 몸짓보다 리허설 과정의 풍경에 더 즐거움을 느끼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한 것도 무대 뒷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함이었다.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작업한 뒤 1961년 <부랑자들>로 첫 장편 극영화를 만들었다.

그 어떤 예술보다 영화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스페인 내전이었다. 4살 때였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피난 가는 인민들이 굶주림에 고통을 받았다. 내전의 풍경은 정말 참혹했다. 그렇게 경험한 충격은 훗날 프랑코 독재 아래 스페인의 사회와 정치를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게 했다. 이야기를 전개할 때 상황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돌려서 표현하는 방식을 따르게 된 것도 그 충격의 여파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스토리텔링 방식은 스페인 내전의 영향 뿐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즐겨 읽었던 미겔 데 세르반테스,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 등의 16세기 스페인 작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1960년대 당시 몇몇 스페인 영화인들은 할리우드에 가야만 영화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건 틀린 생각이다. 역사, 문화, 정치, 사회 등 스페인에 관한 모든 것이 내 영화세계를 구축했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자국에서 이야기의 소재를 찾아 치열하게 영화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 안영환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