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예정시간은 한참 뒤로 밀렸다. 줄리엣 비노쉬는 갑작스레 인터뷰 시작을 앞두고 마음을 바꾸었다. “부산관객들과 내 영화를 보고 싶다.” 칸국제영화제의 상영 이후, 두 번째 관객과의 호흡. 상영이 끝난 후 그녀는 말했다. “영화는 사람들의 가슴과 마음을 같은 장소로 몰고 간다.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영화 보면서 많이 웃을 수 있었을 거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함께 한 영화 <증명서>는 올해 부산의 화제작이다. 영국인 작가가 책 홍보 차 이탈리아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프랑스 여인과 만나 즉흥적으로 토스카나 교외로 떠나는 이야기. 복제 미술품의 진짜와 고유성을 토로하던 둘이 결국은 남녀관계에 관해 따져 묻게 되는, 그야말로 이 이야기는 사랑과 관계에 관한 집요한 탐구다.
“<증명서>는 여자들에게 중요한 영화다. 여자는 남자보다 관계에 더 민감하고 자기 자신의 감정에 더 가까이 가는 존재다.” 시시각각 변하는 영화 속 그녀의 모습은 연기라기보다 두 아이의 엄마, 무용과 글과 그림 등 창작에 목말라하는 예술가로서 비노쉬를 담아낸 듯하다. “여자들은 어릴 적부터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진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그 벽이 허물어지면서 자신이 어디에 기댈지 모르게 된다. 그 감정의 폭발, 공허함은 영화 속 그녀처럼 나 역시 겪는 문제다. 마치 그녀가 나고, 내가 그녀인 것 같았다.” 위기에 처한 그녀와의 오버랩, 비노쉬는 올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았다. “젊었을 때라면 못 받았을 텐데 한편으론 아이러니 같다. (웃음) 이렇게 나이 들어서 받으니 나도 내 인생에 성공한 것 같다.”
15년 전부터 키아로스타미 감독과 함께 할 작업을 기대해왔고 그 기회를 위해 노력해왔다는 비노쉬. 키아로스타미 뿐만 아니라 허우샤오시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등 아시아 감독과의 작업에도 항상 열려있다. “진정한 예술가는 찾기 힘들다. 그런 사람들은 찾아다녀야 한다. 그런 바람과 과정이 결국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데려다준다. 중요한 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알려주는 거다.” 그녀의 이 소중한 기회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곧 파리를 배경으로 한 폴란드 감독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 감독의 <스폰서링>의 개봉과, 올리비아 아사이야스와의 또 다른 작업을 계획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