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소녀> Pure
리자 랑세트/ 스웨덴/ 2010년 / 102분 / 플래시 포워드
성장이란 때론 잔혹하다. 아버지 없이 알코올중독자인 어머니와의 다툼으로 일상을 소모하는 스무살의 카타리나에겐 탈출구가 필요하다. 그녀는 싸구려 거리음악을 듣는 또래와는 달리 클래식을 듣고 있을 때 자신이 특별해짐을 느낀다. 때문에 직장에서 잘리고 울적한 마음에 찾아간 클래식 공연장에서 얻게 된 극장 프론트의 새 일자리는 그녀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장중한 모차르트 ‘레퀴엠’과 함께 출발하는 이 거짓된 출발 장면은 이미 파국의 전조를 드리우고 있다.
자신을 부정하고 또 다른 삶을 꿈꾸는 소녀에게 있어 동경과 사랑은 구분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선망하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카타리나에겐 모든 것이 매력적이고 그녀와 중년 지휘자의 로맨스는 사랑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학습과정에 가깝다. 그녀는 그를 통해 음악과 예술이란 이름의 꿀을 탐닉한다. 한바탕 정사 후 일어나 바로 책을 읽는 카타리나의 모습은 잔뜩 물을 머금고 풍성하게 자라는 화초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단어 자체의 아름다움과는 달리 순수함이란 왜곡된 잣대 위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대상을 판단하며 위험하게 흔들린다. 순수했던 만큼 믿음과 신뢰가 배신당했을 때, 그 결과 또한 충격적이다.
일견 치정이 얽힌 통속극으로 보일지도 모를 이야기를 섬세한 성장 영화로 변모시키는 것은 주연 배우인 알리샤 비칸더의 힘이다. 전체적으로 건조한 화면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것은 이 영화가 클로즈업이라는 영화의 원초적 스펙터클의 힘을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클로즈업에 포착된 카타리나의 표정은 시시콜콜한 설명을 보태지 않아도 소녀의 성장과 함께 하는 치명적 떨림을 충실히 전달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카타리나의 얼굴 위로 천천히 번지는 묘한 미소에 이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