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서(김효서)는 떠나버린 연인 안나를 찾는 폴란드 남자 그루지엑과 우연히 전화 통화를 한다. 게이라고 소문난 영수에게 후배 세연(염보라)이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비오는 날 밤, 느닷없이 나타난 옛 애인 은희(정유미)의 끈질긴 집착 앞에 현오(윤계상)는 끝내 울고 만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영수가 ‘여자’를 좋아하게 됐다는 고백하자 운철(장서원)은 절망한다. 뮤지션 혜영(요조)과 주영(윤희석)은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애매한 고백 아닌 고백만 주고받으며 덜컥거린다.
옴니버스 형식이라는 한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김종관 감독의 뛰어난 단편들을 모았던 옴니버스 <연인들>과 옴니버스 형식의 장편 데뷔작 <조금만 더 가까이>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몇분 동안의 영상에서 반짝거리는 감수성을 은유적인 ‘보여주기’로 풀어내는 데 탁월했던 김종관 감독의 재능이, 각각 20분 정도의 개별적 에피소드들이 느슨하게 하나의 이야기로 묶이는 장편으로 바뀌는 데 있어 약간의 어긋남이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의 단편이 안겨줬던 은밀한 기쁨은, 그러니까 비밀스런 눈짓 혹은 제스처, 가볍게 스쳐가는 말 한마디 속에 온갖 감정과 기억이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이 가능했던 데서 기인한다. <조금만 더 가까이>에서도 그런 빛나는 순간들이 출몰하지만, 가끔 그 순간들이 지나치게 길어져버리거나 혹은 지나치게 많은 정보들이 들어갈 때가 있다. 그러면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정서가 단 하나의 해석으로 정리되어버리는 느낌이 든다. 배우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실없이 농담을 따먹는 주영 역의 윤희석, 마음이 식어버릴 수 있다는 현실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커플을 연기한 오창석과 장서원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