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이파네마 소년>은 물론이라고 말한다. 꿈에서나 가능한 사랑을 <이파네마 소년>은 꿈이니까 가능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소녀(김민지)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단짝과 함께 해변을 찾는다. 소녀는 단단한 몸매와 선한 눈을 가진 소년(이수혁)을 만나게 되는데 보드타기를 가르쳐주겠다는 그의 관심이 싫지만은 않다. “바다에는 누군가의 꿈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그 문을 찾기 위해 수영을 열심히 한다”는 소년에 대한 소녀의 궁금증은 점점 사랑의 감정으로 변해간다. 신인배우들의 앳된 용모를 훔쳐보거나 삿포로와 부산의 이국적인 풍경을 즐기려 든다면 <이파네마 소년>은 심심한 청춘영화에 불과할 것이다. <이파네마 소년>의 진짜 재미는 판타지와 현실을 뒤섞는 블렌딩에서 나온다. 판타지가 이야기 사이에 끼워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판타지가 나서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 특히 두 남녀 배우가 부산과 삿포로의 소년과 소녀 이렇게 1인2역으로 교차 등장하는 설정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삿포로의 소년과 소녀는 부산의 소년과 소녀의 과거인가, 아니 두 커플은 한 커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커플인가.
중반 이후 <이파네마 소년>의 소년과 소녀의 특이한 사랑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백일몽을 꾸면서 사랑을 나눈다. 옛 연인을 잊지 못하는 삿포로의 소년은 밤마다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과거의 그녀를 만나는 꿈을 꾼다. 소년의 꿈은 절실하고 또 강력하다. 소년의 꿈은 우연하게도 소녀의 꿈에 불시착한다. 눈을 감아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그들에게 꿈은 허전하지만 달콤한 휴식이다. 파도에 몸을 맡기는 해파리처럼, 소년과 소녀도 꿈꾸면서 사랑하고 조금씩 성장한다. 기다리는 자와 기다려지는 자가 정확히 자리를 바꾸는 영화 속 대구의 형식이 단단하고, 서툴고 망설이는 청춘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내보인 배우들의 연기도 신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