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는 불리한 물적 조건, 그리고 그로 인해 턱없이 부족해진 시간과 싸우는 영화 형식이다. 따라서 단편은 항상 적은 근거들로 세상의 핵심을 마치 시(詩)처럼 드러내 관객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올해로 8회째를 맞는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AISFF2010, 11월4∼9일 씨네큐브 광화문)에서는 그러한 단편영화의 세계적 흐름을 볼 수 있다.
개막작으로는 백설공주를 법정 증인으로 세워 동화를 재해석한 릴리 버드셀의 <원스 어폰 어 크라임>(미국)과 뇌수막염이 창궐하는 아프리카 서부에서 의사와 소년이 겪는 하루를 그린 마이크 파이에브로크의 <페니실린>(독일), 두편이 상영된다. 국내 유일의 국제경쟁단편영화제답게 출품작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총 83개국 2262편이 접수돼 역대 최다의 출품국가 수와 작품 수를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본선에 진출한 작품은 총 30개국 52편으로, 8개 부문으로 나뉘어 3300만원의 상금을 놓고 영화제 기간 중 섹션별로 2회씩 상영된다. 이중 수상작은 폐막작으로 상영된다.
경쟁부문 작품들은 단편다운 예리한 순간통찰과 활기가 넘친다. 영화사에서 우리가 ‘기차’를 주로 추억한다면, <덕 크로싱>(스페인)은 영화사의 사각(死角)에서 ‘오리’가 매우 중요한 배우였음을 때로는 농담처럼, 때로는 진지하게 보여준다. 모든 프레임이 순전히 육체노동의 결과라는 점에서, 애니메이션이 정치경제학적으로 위대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빅뱅 빅붐>(이탈리아)은 우리가 애니메이션에 대해 범하는 습관적 평가절하를 부끄럽게 만든다. 탈모가 될까 불안해하는 30대 록 뮤지션 남자가 대머리 아버지를 방문해 머리카락의 상실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간적 성숙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머리카락>(프랑스)은 ‘만국의 탈모인들이여 단결하라’고 외치며 서로를 격려하게 한다. 이 밖에 딸의 연애와 엄마와의 관계를 묻는 <미니츠 더 아워스>(쿠바, 브라질)와 아버지에게 학대받던 소년이 왕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구하는 애니메이션 <앵그리맨>(노르웨이) 등 여러 나라 작품이 포진해 있다. 국내 작품으로는 지태경의 <무덤가>, 장은연의 <내맘도 몰라주고> 등을 들 수 있는데, 한국 단편들이 영화와 현실에 대해 어떤 태도를 공유하고 있는지 얼핏 엿볼 수 있다.
특별 프로그램들은 ‘하이브리드 단편’을 표방하고 있다. 단편과 영화 외부의 교합을 통해 단편의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다. 한·일 양국의 풍경에 대한 프로그램인 ‘트래블링 쇼츠 인 코리아’, ‘트래블링 쇼츠 인 재팬’은 단편의 감상이 하나의 여행 체험이 될 만하다. 그중 오치아이 겐의 <우물 안 개구리>는 마음의 독립과 성장을 위한 여행의 모범답안이다.
‘거장들의 패션필름’은 유명 감독들이 찍은 패션 브랜드와 향수에 관한 단편들로 눈길을 끈다. 데이비드 린치의 신비스러운 <레이디 블루 상하이>(2010), 올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소피아 코폴라의 <미스 디올 셰리&메이킹>(2009) 외에 리들리 스콧 부녀의 프라다 향수를 위한 단편 <선더 퍼펙트 마인드>(2005), 가이 리치의 <디올옴므 랑콩트르>(2010), 왕가위의 <그녀의 손길>(2004), 김지운의 <선물>(2009)이 상영된다.
이 밖에 유망 광고감독들의 단편 모음인 ‘메이드 바이 커머셜디렉터스’는 그들이 가장 짧은 시간의 영상을 다루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결과물에 흥미가 간다. 또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연출한 유키사다 이사오의 사랑에 관한 단편을 모은 <여자는 두번 플레이한다>는 일본 유명 배우들을 좋아하는 팬들의 관심을 끌 만하다.
경쟁부문 심사위원은 배창호, 장률, 박흥식 감독 등이며 특히 장률 감독의 경우는 ‘장률 감독의 영화세상’ 마스터클래스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외 <러브레터>의 배우 가시와바라 다카시가 참석하는 ‘한·일 국제영상&관광 심포지엄’, 국내외 초청감독의 소장품 경매 등 여러 행사도 마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