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공연] 겉만 봐선 모르잖아요, 사람도 인생도
2010-11-04
글 : 심은하
연극 <시라노 드 베르쥬락>

11월14일까지 / 명동예술극장 / 출연 안석환, 김선경, 이명호, 전진기 등/ 1644-2003

사랑은 어떻게 오는 것일까. 외모로? 말로? 느낌으로? 19세기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은 이 의문을 방대한 양의 아름답고 시적인 언어로 풀어냈다. 그 낭만극이 무대에 올랐다. 올가을 극장가의 승자인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영화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일을 하는 남자 병훈(엄태웅) 역의 모티브 ‘시라노’는 배우 안석환이,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남자 상용(최다니엘) 역의 모티브 ‘크리스티앙’은 연극 배우 이명호가, 두 남자가 사랑한 여자 희중(이민정)을 연상시키는 ‘록산느’는 뮤지컬 배우 김선경이 맡았다.

연극 <시라노 드 베르쥬락>은 추남 시라노가 사랑하는 록산느에 대한 연정을 미남인 크리스티앙의 연애편지 대필로 달래며 평생 순정을 지킨다는 내용이다. 낭만주의 희곡답게 트위터나 휴대전화 등 단문으로 이야기하는 요즘 시대에 느낄 수 없는 풍성한 표현이 눈길을 끈다. 극 초반 시라노가 자신의 콤플렉스인 코를 소개하는 부분을 보자. “친한 사이라면 ‘자네 코가 술잔 속에서 헤엄을 치는군. 다음부턴 아예 콧구멍으로 술 마시는 방법을 개발해보게’, 호기심 어린 말투라면 ‘이 길쭉한 물건은 무엇에 쓸까? 필통인가? 아니면 칼집인가?’, 부탁의 말씀으로 말한다면 ‘제 잉꼬새가 살짝 올라앉아 노래할 수 있도록 그대의 코를 좀 내밀어 주시겠나이까?’, 험악하게라면 ‘이봐, 담배를 삼가는 게 좋겠어! 그 콧구멍에서 담배 연기 나오는 걸 보고 이웃 사람들이 불이라도 난 줄 알겠군!’” 이렇듯 연극은 대사 한줄 한줄이 서정적이며 재치가 넘친다.

원작은 전체 5막의 대작이다. 연극은 이것을 2부로 날렵하게 재구성했다. 1부(1∼3막)는 시트콤처럼 활기차고 흥겹게, 2부(4∼5막)는 차분하게 이야기에 힘을 보탠다. 대신 시대적 배경은 원작 속 17세기에 고정하지 않는다. 시라노와 그의 부대 친구들은 청바지에 구두, 검정 재킷을 군복으로 입는다. 삼류 시인이자 빵장수인 라그노는 랩까지 보여준다. 하지만 너무 가볍게 풀려 했던 걸까. 코미디가 강조된 1부는 중간중간 산만함을 가져왔다. 사랑의 세레나데가 진행되는 중에 난데없이 등장하는 신부, 영화 <황산벌>을 연상케 하는 육두문자의 향연, 배우들의 대사가 허공으로 흩어진다. 소품이나 무대 교체를 극의 구성으로 활용해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인상적이다.

연극은 외모와 말(言)이란 단면을 통해 인간이 사랑하는 것이 몸인지 말인지 또한 마음은 몸에 따르는 것인지 말에 따르는 것인지 관객에게 질문한다. 언어와 외모를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을 통해 교차시켜 록산느의 마음을 통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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