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DVD] 추악함을 보지 못하는 괴물들
2010-11-05
글 : 이용철 (영화평론가)

<아이 엠 러브> Io sono l’amore(블루레이)(2009)



감독 루카 과다니노
상영시간 120분
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 / 음성포맷 DTS-HD 5.1
이탈리아어(일부 영어) / 자막 영어
매그놀리아(미국)
화질 ★★★★☆ / 음질 ★★★★☆ / 부록 ★★★☆

하나, 밀라노의 만찬. 함박눈이 내린 어느 날, 레키가(家) 우두머리의 생일파티가 열린다. 눈이 세상을 평등하게 만든 바깥과 달리, 화려한 컬러가 지배하는 저택은 위계의 날이 시퍼런 곳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뽐내는 속으론 을씨년스러운 겨울 밀라노의 차가운 기운이 맴돈다. 장손이 요리사에게 경주의 우승을 빼앗긴 게 저녁 내내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그림을 버리고 사진을 선택한 손녀는 가문의 지위에 상처라도 입힌 듯 눈총을 받는다. 섬유사업을 바탕 삼아 명문가를 세운 할아버지는 근대화와 산업의 도시인 밀라노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기계를 신봉하는 그는 규칙·질서·복종·침묵의 세계를 창조했다. 그날, 할아버지는 아들 탄크레디와 장손 에도아르도에게 공동으로 사업체를 물려주겠노라고 선언한다. “나를 대신하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졸지에 부자를 경쟁자로 만들어버린다. 그는 자신은 황제이고, 레키가가 왕과 왕비와 귀족으로 구성된 사회인 줄 착각한다. 그런데 어쩌나,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그의 나라는 ‘Fake Empire’인 것을, 기계 및 자본과 친숙한 그의 내부엔 고귀한 피가 흐르지 않는 것을. 루키노 비스콘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배우를 불러오고, 파격적인 구도와 함께 엄격한 프레임을 구사하며, 옛 영화의 품격마저 수혈한 <아이 엠 러브>를 두고 많은 평자들은 비스콘티의 영화를 거론한다. 하지만 여기에 비스콘티의 비애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분노 같은 건 없다. 오히려 조셉 로지가 이탈리아영화의 선배보다 더 큰 그늘을 지운다. 부르주아의 실내를 예리한 칼로 해부하면서도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는, 그리고 건조한 비웃음을 날리는 로지가 루카 과다니노의 곁에 서 있다.

둘, 산레모의 전원. 탄크레디의 아내 엠마는 러시아 여자다. 탄크레디의 손에 이끌려 이탈리아로 온 그녀는 자본주의사회의 휘황찬란함에 현혹돼 본명까지 버린 채 이탈리아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가족, 아내, 어머니가 되고자 언어를 배우고 교양을 쌓았으나 마음만은 위장을 하지 못하는 법이다. 가장과 허식에 지치고 고향의 향수에 젖을 때 그녀가 하는 일이라곤 러시아 음식을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두 사건이 생긴다. 딸 엘리자베타가 동성애자임을 고백하는 순간, 엠마는 여성으로서 자유와 성을 생각한다. 아들의 친구 안토니오가 나타나 낯선 행복을 안긴다. 산레모의 따뜻한 햇살 아래로 엠마가 들어서는 때부터 <아이 엠 러브>는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의 영향 아래 놓인다. 런던에서 피렌체로 복귀한 만년의 로렌스가 근대 문명에 대한 환멸을 작품에 담은 것처럼, 밀라노에서 산레모를 방문한 엠마는 냉혹한 관념과 끝없는 탐욕과 차가운 기계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안토니오를 통해 자연과 인간성과 쾌락을 회복한다. 산들바람이 불고, 벌이 윙윙대는 가운데 꽃과 풀과 산딸기 사이에서 육체적 관계를 나누는 부르주아 여성 엠마와 요리사 안토니오는 귀족의 아내 코니와 사냥터지기 멜러즈에 다름 아니다. 물론 <아이 엠 러브>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어지는 마지막 만찬과 장례식 챕터에서 다시 과거로 돌아간 엠마는 마침내 정체성을 찾는다. 거울로 둘러싸인 폐쇄된 공간에서 괴물로, 비인간으로 사는 자들은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한다. 괴물은 타자와 마주했을 때에야 자신의 추악함을 깨닫는다. 엠마와 엘리자베타가 그랬으나, 레키가의 남자들은 결코 그 영역에 들어설 수 없었다. 폭발하는 틸다 스윈턴의 연기와 존 애덤스의 음악 등 <아이 엠 러브>의 만듦새는 더없이 훌륭하지만 보편성이 낮은 탓에 울림은 적다. <시민 케인>과 같은 운명이란 소리다. 미국에서 출시된 블루레이는 음성해설, 메이킹필름(15분), 인터뷰(71분), 예고편을 부록으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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