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순 한국에서 열리는 큰 행사는 G20만 있는 게 아니다. 11월10일(수)부터 28일(일)까지 종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우리 시대의 아시아영화 특별전’은 그야말로 또 하나의 G20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일본, 타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이란 등 아시아 각국의 현대사가 이 스무편의 영화에 담겨 있다. <내 아버지>와 <내 할머니>(가와세 나오미), <피와 뼈>(최양일), <아무도 모른다>(고레에다 히로카즈), <열대병>(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등을 놓고 ‘익숙한’ 목록이라 단정짓지 마시길. 중요한 건 왜 최양일의 이 영화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이 영화가 ‘우리 시대의 아시아영화 특별전’에 들어와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번 영화제의 목표와 방향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그러나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의 현재를 들여다보자는 데 있다. 현재를 보기 위해선 과거가 끌려들어오고, 거기서부터 서구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와 이젠 거의 잊혀져가는 고유의 역사가 뒤엉킨 혼란스런 지층이 돌출된다. 현재의 아시아영화를 본다는 건 단순히 쾌락의 감상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건 가끔은 고통스럽기까지 한 체험이다.
그간 부산영화제와 전주영화제, 시네마디지털 서울,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 등의 아시아영화들을 부지런히 챙겨본 관객이라면 눈에 익은 이름이 많을 것이다. 이중 몇편을 소개하자면, 가린 누그로호의 2006년작 <오페라 자바>를 먼저 꼽을 수 있다. 인도 고대 산스크리트 문학의 고전 <라마야나> 중 ‘시타의 유괴’를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과 무용, 미술을 사용한 낯선 뮤지컬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은유적인 노래 가사로 사건들을 묘사하고, 비정형적인 무용 동작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눈부신 색채와 오브제로 미장센의 디테일을 채워나간다. 셰라드 안토니 산체스의 <하수구>는 대체 어떻게 캐스팅해 어떻게 촬영했을지가 궁금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리얼리티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재개발 위기에 처한 필리핀 빈민굴의 한 마을, 소년 소녀들은 제각기 강 하류 하수구에 모여든다. 아무런 희망없이 무의미한 수다와 육체의 언어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10대들 너머로 자막화되지 않은 라디오 뉴스와 음악이 필리핀의 어느 한 순간을 명징한 앰비언트로 포착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쉬린>은 형식주의의 극단을 보여주는 한 예다. 줄리엣 비노쉬를 비롯해 이란의 유명 여배우 114명이 극장 안에 앉아 영화를 본다. 하지만 관객은 그 영화 대신, 영화를 보는 여배우들의 얼굴 클로즈업만을 90분 내내 지켜보게 된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영화 대신 낯선 언어의 대사만이 귀를 채우고, 그 영화에 반응하는 배우들의 다양한 표정이 이미지를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촬영 당시 배우들은 영화를 보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녀들이 텅 빈 공간을 바라보며 제각각의 감정에 빠져들어갈 때, 그녀들의 미소와 눈물과 경악의 표정은 그녀들만의 것이다. 스리랑카에서 날아온 비묵디 자야순데라의 <두 개의 세상>은 신약 성서 앞부분의 예수 탄생 일화 혹은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신화를 연상케 하는 민담에서 출발한다. 일종의 묵시록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스리랑카 도시와 시골 양쪽 모두에서 벌어지는 유혈 사태는 전세계적인 폭력의 암시로 풍부한 함의를 지닌다. 지난해 사망한 야스민 아흐마드의 유작 <탈렌타임>은 말레이시아 고등학교의 장기자랑대회(탈렌타임)를 배경으로 말 못하는 소년과 피아노 치는 소녀 사이의 풋풋한 첫사랑을 극의 중심에 둔다. 동시에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뒤섞인 가족과 이웃을 풍성하게 배치함으로써, 그저 평범한 10대 로맨스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 말레이시아의 복잡한 가계도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는 데 성공한다.
개별적인 영화만을 보았을 때 쉽게 이해하지 못할 수 있을, 아시아 각국의 사회적 컨텍스트에 관한 강좌도 준비돼 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현재’(홍성남), ‘아시아영화의 지금’(김지석), ‘크메르루주: 학살의 기억’(김성욱), ‘라야 마틴과 필리핀영화의 현재’(유운성) 등 아시아영화 전문가들의 강좌를 놓치지 마시길(www.cinematheque.seou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