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자> 속 초인(강동원)은 지구를 구하러 나설 형편이 아니다. 그는 오른쪽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고 남들과 다른 탓에 부모를 부정해야 하는 처지이며 그런 자신를 혐오한다. 그는 사람들의 행동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으로 고작 생활비를 벌고 있다. 그에게 대항하는 규남(고수) 또한 거대한 능력을 지닌 건 아니다. 중학교 졸업 정도의 학력을 가진 그는 자신을 ‘임 대리’로 불러주는 한 전당포에 취직한 뒤, 이곳에서 돈을 훔치러 온 초인과 만난다. 규남이 초인과 맞설 수 있는 이유는 단지 그가 초인의 조종 밖에 선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규남은 초인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벌인다.
<초능력자>의 플롯은 철저히 초인과 규남의 대결에 집중하고 있다. 양쪽은 서로에게 ‘왜 너만 조종되지 않는가’, 그리고 ‘네가 뭔데 세상을 조종하는가’를 놓고 분노한다. 이들의 대결은 사회구조적인 구도를 연상시킨다. 초인에게 조종당했던 사람들은 불가항력의 지배자에 대해 무심하고, 공권력마저 초인에 의해 무너진다. 영화에서 전시되는 서울의 뒷골목과 허름한 아파트의 풍경,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이 초인에 의해 목숨을 잃는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자본권력 대 소시민’의 대결이 연상됐던 <괴물>의 결은 <초능력자>에서도 강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흥미로운 캐릭터와 사회적 시선에 비해 <초능력자>의 오락영화적인 긴장과 쾌감은 덜한 편이다. 이들의 대결에 배합된 호러영화적인 이미지와 좌충우돌 코미디는 서로 이질적이다. 초인과 규남을 기어이 만나게 하려는 작위적인 설정이 눈에 띄는가 하면, 초인의 초능력과 규남의 맨몸이 맞서는 장면들은 종종 공허하다. 강동원과 고수의 가공할 매력으로 묘사된 신선한 캐릭터만으로 버티기에는 이야기의 체력이 빈약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