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이루지 못했던 꿈의 무지갯빛 실현 <레인보우>
2010-11-17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지완(박현영)은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둔다. 처음에는 금방 될 것 같았던 영화감독에의 꿈이 점차 험난한 길로 드러날 즈음 <레인보우>도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5년 동안 아무 결실이 없는 지완을 보며 남편은 불쌍히 여기면서도 불안해하고 아들은 시큰둥하다. 지완은 충무로 제작사를 돌면서 시나리오를 고쳐내며 혹은 모욕에 가까운 말을 참아넘기며 제도 안에서 고군분투하지만 꿈을 이루기가 힘들다. 과거에 찍어둔 ‘레인보우’라는 밴드의 인터뷰를 기초로 무언가 새로운 걸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지만 쉽지는 않다. 급기야 쓰던 시나리오를 들고 직접 이곳 저곳을 방문해보지만 그 일도 잘 풀리지 않는다. <레인보우>는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했는데 그 자전적 이야기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결국 성공하지 못한 누군가의 실패담, 한 사람만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을, 지극히 현실적인 대다수 충무로의 사정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인보우>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이 영화는 괴로운 현실을 말하기 위해 시작됐으나 안타깝게도 영화적 자기 연민에 빠져 다시 한번 무너져버리고 마는 많은 영화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자기반영적으로 접근하는 많은 영화가 발목 잡히는 그 덫을 가볍게 넘는다. <레인보우>는 엄마가 영화판에서 꿈을 좇는 이야기와 뮤지션이 꿈인 중학생 아들이 학교의 밴드 동아리에서 꿈을 좇는 이야기를 서로 묶은 다음, 두개의 꿈이 어떻게 밟히지 않고 성장하는지를 두 이야기의 합주로 보여준다. 엄마와 아들의 관계로서 서로 돕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곤경이 비슷한 두 사람이 묵묵히 자기의 영역에서 열심히 하면서 영화적 화음을 만든다.

영화 속 감독 지완을 괴롭게 했던 충무로의 요구들(“이 영화 장르가 뭐예요?” “색깔이 분명해야지요”)에 신수원의 영화는 이제 신경도 쓰지 않는다. 다큐, 음악, 판타지 등을 자연스럽게 놀게 하며 상업영화가 꼭 분명한 장르와 톤만으로 가능한 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충무로에서 영화를 준비하다가 좌절한 뒤 그 바깥에 나와 충무로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기에 비정한 칼날을 지닐 것이라 여겼는데 진심은 다른 데 있었던 것 같다. <레인보우>가 충무로에 대한 역습이긴 해도 그건 일부분이며 중요한 건 이루지 못했던 꿈의 무지갯빛 실현에 있는 것 같다. 아기자기한 내용의 일본영화를 연상케 하는 <레인보우>는 낙관적이고 다정한 상업영화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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