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해영] “남다른 취향을 열어보여도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야”
2010-11-19
글 : 강병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페스티발> 이해영 감독

“김태용 감독의 <만추>가 여심을 흔드는 영화라면 <페스티발>은 낭심을 흔드는 영화.” 이해영 감독이 트위터에 올린 글을 본 편집장은 슬쩍 “낭심을 흔드는 인터뷰를 해보라”고 했다. 걱정이다. <페스티발>을 직접 보니 낭심이 흔들리기는커녕 없던 측은지심이 발동했다. 평범하지 않은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아닌데”, 자신을 스스로 감춰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페스티발>은 이들이 온 천하에 자신의 취향을 공표하기 이전에, 자신을 인정하고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미련을 버리는 과정을 그린다. 이해영 감독은 <페스티발>을 “농담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농담으로만 보기에는 상당히 울컥한 감정을 지닌 성(性)적 성장영화였다.

-기자시사 이전에 일반시사를 가졌다. 반응이 어떻던가.
=기획팀 친구는 반응이 꽤 적극적이라고 하던데, 나는 성이 차지 않았다. 사람들이 웃다가 앰뷸런스에 실려갈 줄 알았는데. (웃음) 생각보다 여성 관객이 많이 웃는 게 의아했다. 남자들이 더 재밌어할 줄 알았다.

-<페스티발>은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이 영화는 실화를 소재로 했는데, 보안상 가명을 사용한다는 내용이다.
=장난스럽게 보일까봐 마지막까지 넣을까 말까 고민했다. 누군가가 실화로 믿어줬으면 했다. 옆집이나 가족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환기시킨다고 할까.

-시나리오를 쓰면서 취재를 했다고 들었다. SM커플은 어떻게 취재했는지 궁금하다.
=일단 자료를 많이 봤고, 실제 SM커플을 만났다. 나도 사람이라 약간의 기대치가 있었다. 여자는 평상시에도 킬힐을 신고, 남자는 징 박힌 옷을 입고 다니지 않을까, 이런 거. 그런데 정말 표준적인 대학생 커플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왔다. 그때 기대감이 무너지는 쾌감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SM커플로 만나서 결혼도 한다더라. 그럼 평생 서로를 묶고 때리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건 가끔 있는 이벤트에 불과하다고 하더라. 그들이 말하는 SM은 관계의 속성이라는 거였다. 권위적인 남편과 순종적인 아내로 역할극을 하는 거지. 예를 들어 남자가 바로 앞에 재떨이가 있는데도 담배를 물고는 여자를 부른다. 그럼 여자가 와서 조금 옮겨주고 가는데, 이게 SM이라는 거다. SM이 너무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 신선했다.

-영화의 SM커플, 순심과 기봉이가 하는 행위는 언뜻 저들이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자료를 참조한 SM이라기보다는 상상력으로 풀어낸 SM으로 보이더라.
=SM을 관계의 속성을 볼 때 이들의 행위는 놀이라고 봤다. 그렇다면 그들의 공간은 놀이방이 되는 거다. 사실 한국영화에서 SM을 제대로 본 게 <거짓말>뿐이 없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봤는데, 그렇게 회초리나 각목으로 때리는 행위를 가지고 코미디를 만들기가 어렵더라. SM의 마음과 태도는 이해하는데, 그 행위를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거다.

-<페스티발>은 이상한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인공으로 하지만 신하균과 엄지원이 연기한 장배와 지수 커플은 다른 차원의 캐릭터다. 성기 콤플렉스라는 건 다른 커플들에 비해 평범해 보인다.
=보편적인 캐릭터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어야 관객이 도망가지 않고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막연하게 마초가 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그냥 마초를 가져오는 건 내 성향과 안 맞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마초를 가져온 거다. 남자들이 사우나에 가면 남의 걸 많이 보지 않나. 평소 그게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성기에 집착한다는 게 보편적이라는 것이 재밌었다.

-장배의 성기를 굳이 모자이크로 가려서 보여주는 장면은 의아했다. 모자이크에 의도가 있는 건 아닌가 싶더라.
=그냥 별 뜻없는 장난이었다. (웃음) 영화가 되게 얌전하지 않나. 한번 정도는 ‘어?’ 하고 놀랄 정도로 확 가버리고 싶었다. 그 장면은 약간 길게 찍었다. 다른 컷은 대부분 짧은데, 그 컷만 길다. 앞에는 짧게 나오고 말면 놀라고 말 테니까, 웃을 때까지 시간을 주려고 한 거다. 야심도 있었다. 초반에 장배의 오줌발을 걸고 지수를 잡은 숏이 나온다. 이게 ‘오버 더 오줌 숏’이라면 ‘오버 더 귀두 숏’을 찍어보려 한 거다. (웃음)

-주변 반응은 어땠나.
=처음 모자이크는 성성해서 좀더 잘 보였다. 딜도를 가지고 찍은 건데, 시뻘건 색을 가진 딜도였다. 관계자 시사를 할 때 다들 경악하더라. 너무 혐오스럽다고. 사실 (신)하균이는 그 장면을 너무 즐겼다. (웃음) 자세히 보면 모자이크 위로 손이 오르내린다. 그건 내가 준 디렉션이 아니었다. 심지어 (엄)지원이 단독숏을 찍을 때도 그러고 있더라. (좌중 폭소)

-또 하나 의아했던 건 류승범이 연기한 상두가 인형을 사랑한다는 설정을 왜 반전처럼 처리했을까 하는 거였다. 전체 맥락상 그의 일상이 묘사될 줄 알았다.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이다. 반전처럼 나오는데, 감독인 내가 스스로 인형을 사랑하는 애라고 말하면서 말도 안되는 홍보를 하고 있다. (웃음) 처음부터 인형과의 일상을 풀 때 관객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더라. 그런 느낌을 줄이는 쪽으로 풀기가 어려웠다. 반전 비슷한 묘사가 더 영화적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사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자혜(백진희) 위주로 쓰다 보니까 그녀의 감정라인을 타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혜는 어딘가 <천하장사 마돈나>의 동구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힘겨운 현실을 살고 있고, 돈을 벌기 위해 몸이 탈진할 때까지 달려야 한다는 설정 때문인 것 같다.
=그랬나? 나는 <페스티발>을 만들면서 <천하장사 마돈나>와는 달라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쓸 때도 보지 않았다. 그러다 편집하는 동안에 우연히 보게 됐는데, 너무 비슷한 거다. 설정도 그렇지만 숏도 비슷해 보였다. 그때 나도 자혜가 동구랑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얼핏 <천하장사 마돈나> 속 (류)덕환이와 진희가 오누이 같은 느낌도 있더라.

-자혜가 수영장에서 문세윤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 나오는 성기 모형의 장난감은 출처가 어디인가.
=미술팀과 소품팀에 태엽을 감으면 움직이는 성기 모양의 장난감을 찾아달라고 했는데, 끝내 못 찾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 집 화장실에 있던 소장품을 가지고 왔다. 녹슬어서 작동이 되지 않았는데, 소품팀이 그걸 기적처럼 살려냈다. 원래 그렇게 힘차게 움직이던 애가 아니었다. 굉장히 젊어졌다. (좌중 웃음)

-왜 처음부터 내놓지 않아서 스탭들을 고생시켰나. (웃음)
=그걸 소장하고 있다면 오해할까봐. (웃음) 스탭들이 내 집을 너무 궁금해하고 있다. 뭐가 더 있을까 싶어서….

-상두의 인형은 어떻게 공수한 건가. 혹시 그것도 소장품인가.
=아니다. 만든 거다. 일반적으로 영화에 쓰는 더미다. 실제 구입하기에는 정말 비싸다. 관련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3천만원 정도 한다더라. 일본과 미국에 만드는 곳이 있는데, 혀가 나오는 건 미국밖에 없다더라. 얼굴은 마지막에 나오는 (김)아중이의 얼굴을 본떠 만들었고, 몸은 다른 배우의 몸이다. 다른 영화에 쓰인 걸 재활용한 거지. 기존의 더미에 아중이의 얼굴을 얹고, 가슴은 D컵 정도로 키웠다.

-메인 캐릭터는 아니지만, 문세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감독의 사랑을 받는 배우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29년> 때도 같이하려 했다. <페스티발>의 시나리오를 제일 먼저 준 것도 세윤이었다. 캐스팅할 때 “넌 나의 페르소나”라고 했다. 세윤이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페르소나가 뭐죠?” (좌중 웃음) 성인용품을 진열한 봉고차의 주인을 생각할 때 누구한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을 구상했고, 세윤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만족도가 높은데, 본인은 뭘 잘했냐고 그러더라.

-<페스티발>의 결론은 “기봉아, 우리 지옥 가자”란 대사로 집약된다. 혹시 더 공격적인 결론을 생각해보지는 않았나.
=만약 그들이 현실과 싸우는 이야기를 했다면 인권적인 맥락에서 운동이 됐을 거다. 난 오히려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천하장사 마돈나>도 맥락이 비슷하다. 동구가 아버지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놔버리지 않나. 주변 상황을 상관하지 말고, 너가 너만 인정하고 존중하면 너의 삶은 너 안에서 행복하고 존중받을 거라고 말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노출이라고 할 만한 장면은 없지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그리고 “청소년이 관람하지 못하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게 영등위의 이유였다.
=충격이었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15세 관람가의 맥시멈을 염두에 두고 썼다. 촬영할 때도 그랬고. 관객이 이 영화에서 베드신을 기대하지 않을까 싶어 걱정스럽다. 자신의 섹스 성향을 찾는 이야기인데,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아직 그것을 규정하지 못한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청소년 상담소에 가면 여자 속옷이 좋아서 고민이라는 상담이 많다고 하더라. 그 친구들에게 속옷을 모으는 걸 권장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고 옥죌 필요는 없어. 조금은 열어도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야”라는 정도를 말하고 싶었다. 어쨌든 이 땅에서는 아닌가보다.

-<천하장사 마돈나>와 비교할 때 본인 스스로 차이를 느낀 것이 있다면.
=소재적으로 기시감이 있다. 내가 볼 때 화술은 달라진 것 같다. <페스티발>은 이야기가 넘친다기보다는 감정이 넘치는 드라마였으면 했다. 완성한 뒤, 스스로 놀랍게 깨달은 건, 영화를 두편째 만들면서 한번도 완성도를 생각하지 못했다는 거다. 지금까지는 내가 생각하는 걸 보여주는 데 방점을 찍었고, 그게 의미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이걸 <페스티발> 전에 깨달았다면 뭔가 더 달라졌을 것이다. <천하장사 마돈나>와 <페스티발>의 목표는 매우 이해영스러운 걸 만들어내보자는 거였고, 그래서 내 취향, 심지어 소장품까지 쏟아냈다. 이렇게 나를 전시하는 방식은 여기가 끝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음 작품도 계획 중인가.
=어떤 동네를 찾아야 할지 고민 중이다. <천하장사 마돈나>와 <페스티발>은 취향을 많이 탄다는 점에서 비슷한 동네인 것 같다. 취향과는 조금 무관한, 아니면 취향을 타더라도 외연이 넓고 깊이가 있는 동네를 찾고 있다. 떠오르는 아이템은 <페스티발>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큰 그림을 먼저 그려보려 한다.

-<29년> 프로젝트가 재가동될 일은 없을까.
=<29년>을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만약 내가 쓴 시나리오에 투자, 캐스팅이 안돼 엎어졌다면 내 탓을 하고 깔끔하게 정리했을 텐데, 이상한 방식으로 엎어지니까 트라우마가 컸다. 그래도 한때는 언젠가는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내 상처를 다시 들추는 게 괴롭더라. 내가 그 작품에 접근한 건 정치적 맥락이 아니었는데, 그런 사람으로 비쳐지는 것도 부담스럽다. <29년>을 접고 <페스티발>을 만든 이유 중에는 그렇게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29년>은 도망치고 싶은 이름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