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너드(nerd) 코미디의 애호가라면 모처럼 포복절도할 영화다. 토드 필립스의 <더 행오버>(2009)가 배우 캐스팅에서부터 뭔가 개운하지 못한 느낌이었다면 <듀 데이트>는 <더 행오버>의 뚱보 말썽쟁이 잭 가리피아나키스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호흡이 절묘하다.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는 말조차 식상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이제는 그저 뭘 해도 다 잘하는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예전이었다면 아마도 오언 윌슨이 그 자리를 꿰찼을 법한, 고지식하면서도 어딘가 엉뚱하게 사건에 휘말리는 불쌍하고 괴팍한 남자의 전형을 멋들어지게 연기한다. 이처럼 토드 필립스는 데뷔작 <로드 트립>(2000)은 물론 원안을 제공한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2006)처럼 ‘남자(들)의 여행’이라는 컨셉에서 최고의 재능을 뽐낸다. 몰래 도망쳤다가 되돌아오고,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를 전화로 의심했다가 또 마음을 고쳐먹으며, 대마에 취해 운전하면서 세상 가장 멋진 창밖 야경을 보는 황당한 미국 횡단기가 이어진다.
피터(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출장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곧 아이가 태어날 것 같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공항에서 만난 에단(잭 가리피아나키스)과 묘하게 엮이면서 비행기에서 쫓겨나는 황당한 일을 겪는다. 졸지에 빈털터리가 된 피터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어쩌다 렌터카가 생긴 에단과 함께 LA로 향하는 머나먼 여정을 함께하게 된다. 대마초를 즐기는 에단이 정체불명의 사람들과 접선하는 곳도 따라가게 되고, 또 그의 졸음운전 사고로 죽을 고비까지 넘기면서 여행은 계속된다. 그렇게 죽이고 싶도록 에단을 증오하면서도 한편으로 애틋한 동정심도 생겨난다.
<더 행오버>에서는 짜증만 안겨주던 잭 가리피아나키스는 단연 발견의 기쁨이다. 영화에서 23살로 설정된 그는 아버지의 유골을 커피 깡통에 담아서 다니고, 자신의 애견 앞에서 자위를 하며(심지어 개는 주인의 그 ‘짓’을 또 따라한다), 세상 그 무엇보다 대마를 사랑하는 멍청이지만 할리우드에 가서 배우가 되겠다는 꿈은 포기하지 않는 순수한 청년이다. 윌 페렐 이후 세스 로건을 비롯해 <듀 데이트>에도 휠체어를 탄 장애우로 출연하는 대니 맥브라이드와 함께 그는 단숨에 할리우드의 주목받는 너드로 떠올랐다. 대마를 파는 약사(?)로 출연하는 줄리엣 루이스와 피터의 ‘절친’으로 등장하는 제이미 폭스의 카메오 출연도 배꼽 잡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