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DVD] <트윈 픽스> <살인의 추억>의 쌍둥이
2010-11-26
글 : 이용철 (영화평론가)

<레드 라이딩 3부작> The Red Riding Trilogy (2009)




감독 줄리언 재롤드, 제임스 마시, 아난드 터커
상영시간 308분
화면포맷 1.85:1, 2.35:1 아나모픽 / 음성포맷 DD 5.1, 2.0
자막 영어 / IFC필름 (미국, 2장)
화질 ★★★★ / 음질 ★★★★ / 부록 ★★★

데이비드 피스의 소설 <레드 라이딩 4부작>은 1974년부터 1983년에 이르는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는 영국에서 마거릿 대처가 정치가로 부상해 집권자로 자리잡은 때와 겹친다(피스는 차기작에서도 같은 시기의 정치적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대처의 집권기는 문제적 시기다. 누군가는 대처주의가 영국의 영광을 되찾았다고 찬양했고, 누군가는 역사의 시곗바늘을 되돌렸다고 비판했다. 20세기 영국 역사상 우익성이 가장 강했던 대처 시대를, 피스는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웨스트요크셔를 무대로, 권력자들이 지하에서 추잡한 짓거리를 벌이고 기업가와 경찰이 뇌물로 연결돼 있으나 언론은 입을 다문다. 그리고 순수하고 힘없는 자들이 희생된다. 피스의 원작을 영화화한 <레드 라이딩 3부작>은 어둡고 불쾌하고 불안한 세계를 오롯이 재현했다. <레드 라이딩 3부작>은 <채널4>에서 TV시리즈로 처음 방영됐고, 호평에 힘입어 올해 미국에서 극장 개봉했다. 평론가 데이비드 톰슨은 ‘<대부>보다 낫다’고 평했으며, 로저 에버트는 만점을 부여했다. 현재 할리우드의 한 메이저사가 미국판 제작을 추진 중이다(한때 리들리 스콧이 감독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레드 라이딩 3부작>의 특징은 편마다 개성을 살렸다는 데 있다. 유명 작가 토니 그리소니가 각본을 썼고, 인물과 이야기가 3부에 걸쳐 연결돼 있으나 세 감독은 각 시간대에 따로 찍은 것처럼 <1974> <1980> <1983>을 연출했다. 시간의 흐름에 맞춰 분장을 바꾸는 것 정도로 만족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16mm로 찍은 <1974>가 1.85:1 화면비율로 상영됐고, 35mm와 레드원 카메라로 찍은 <1980> <1983>이 2.35:1 화면비율로 상영된 건 그런 의도를 따른 한 예다. 줄리언 재롤드의 <1974>는 지역신문의 신임 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거대한 사건의 기초를 닦는다. 실종된 소녀들 사이의 연결점을 찾던 기자는 사건 배후에 경찰과 지역 사업가의 부정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제임스 마시의 <1980>에서는, 당시 영국을 뒤흔든 ‘요크셔 리퍼’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려던 형사가 사건 뒤에 숨겨진 범죄에 접근한다. 아난드 터커의 <1983>은 연대기의 완성을 위해 플래시백을 이용한다. 조직의 비리에 침묵하던 경찰 간부가 양심의 고통을 느끼고, 사건에 새로 뛰어든 변호사가 무시무시한 비밀의 문을 연다.

<레드 라이딩 3부작>과 비슷한 사건을 다룬 영국의 TV물은 흔한 편이다(<가디언>에 ‘<라이프 온 마스>의 악의 쌍둥이’라는 평이 실리기도 했다). 또한 1970년대 초반 미국 범죄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의 진짜 형제는 <트윈 픽스>와 <살인의 추억>이다. 한국, 미국, 영국의 1980년대는 보수정권이 장악한 시대이며, 영화는 시대를 반영한다. 세 영화는 오죽 기이하고 무서운 시대였으면 살인을 추억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대처 시대를 염려한 자들은 예이츠의 말을 인용해 ‘가장 나은 사람들은 모든 신념을 잃었고, 가장 나쁜 사람들은 열렬한 격정에 가득 차 있다’라고 했다. 제목에서 보듯 <레드 라이딩 3부작>은 ‘빨간 망토와 늑대’의 우화를 되살린 영화다. 극중 기자는 빨간 망토 소녀의 환영에 시달리며, 소녀를 성노리개로 삼는 조직은 ‘늑대’로 불린다. 영화는 현대의 늑대가 너무 강력한 탓에 빨간 망토의 구원에 희생이 따르는 데 분노한다. <1974> <1980>은 선의를 지닌 언론인과 형사의 죽음으로 끝나고, <1983>은 선의를 되찾은 경찰과 아버지의 죄를 대신 속죄하는 법조인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한 사회의 시스템이 얼마나 건강한지 알려면 경찰과 언론인과 법조인을 보면 된다. 며칠 전 장자연 사건의 선고 결과를 보면서 다시 느꼈다. 한국에는 열렬한 격정에 가득 찬 나쁜 사람들이 많지만 신념에 차 싸워줄 좋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미국판 블루레이(부록은 DVD)는 부록으로 인터뷰(12분), 메이킹필름(25분), 삭제장면(22분), 기타 홍보영상 등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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