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주성철의 가상인터뷰] 음, 난 선생인데 방 구했으니 이젠 쉬리
2010-12-01
글 : 주성철
<이층의 악당> 박창인

-안녕하세요. 방 보러 오셨죠? 전 집주인 김혜수라고 합니다. 사진하고 좀 얼굴이 다른데, 혹시 쉰 넘으셨나요?
=에이, 쉰은 아니다 정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보이스 비 앰비셔스’인데.

-암튼 아까 통화할 때 너무 소리를 지르셔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그냥 집으로 찾아오시라고 한 거예요. 전 그냥 바빠서 좀 있다가 통화하자는 것뿐이었는데 계속 큰소리로 끊지 마, 끊지 마, 그러시면 어떡해요.
=아,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예전에 공중전화 박스에서 큰 성(형)하고 통화할 때, 옛날에 냇가에서 놀던 얘기도 하고 그러고 싶은데 계속 끊는다고만 하는 거예요. 그때 좀 제가 힘든 상황이어서 긴 얘기를 나누고 싶었거든요. 그때부터 전 통화할 때 누가 저보다 빨리 끊는 게 싫답니다.

-알았어요. 고작 이런 전세 계약하면서 이력서까지 달라고 한 건 죄송하네요. 워낙 험한 세상이라. 근데 아까 전화할 때도 느꼈지만 목소리가 참 좋으세요. 목욕탕에 와 있는 거 같아요. 소리가 막 울려요.
=(손바닥을 탁탁 2번 치면서) 뒤집어보실래요. 등도 밀어드릴까? 에이 농담이에요 농담. 허허허.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여기 이력서에 보니까 좋아하는 음식은 초록불고기, 경력사항으로 주부퀴즈왕, 그리고 현재 직장은 닥터봉물산에서 ‘넘버쓰리’라고 돼 있네요?
=이런 빌어먹을 썅노무 집구석이 다 있나. 아니 누가 나보고 넘버쓰리래?

-이력서 본인이 쓰신 거 아닌가요? 근데 갑자기 이렇게 돌변하시니 좀 무섭네요. 이러다 사람 치시겠어요.
=허허허. 혜수씨, 왜 그러셔요. 물론 제가 썼죠. 잠깐 착각했네요. 제가 가끔 이렇게 흥분하면 바보처럼 구타유발자 같은 짓을 한답니다. 과격하다뇨! 떽! 성경말씀에도 나와 있어요. 재떨이로 흥한 새끼 재떨이로 망한다고요. 전 절대 폭력 같은 거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과의 뜻으로 커피는 제가 타오겠습니다. 제가 타는 커피가 왜 부드러운지 아세요? 따뜻한 목욕탕에서 타니까 그렇죠. 허허허.

-더 믿음이 안 가네요. 정말 계약서 안 쓰면 안될 거 같아요. 그건 그렇고 아까부터 들고 계신 그 꽃다발은 뭐죠? 요즘 같은 계절에 그런 화사한 꽃을 받으시는 분은 참 좋겠다.
=받아주실 거죵?

-네? 저요? 아니 전 애도 있는데….
=아무 걱정 마세요. 혜수씨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되어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을 주홍글씨로 써 내려가고 싶어요. 은행나무 침대에 누워 서울의 달을 바라보며 혜수씨와 8월의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는 기분은 어떨까요? 혜수씨 마음속 이중간첩으로 잠입해 영원히 접속하고 싶네요. 사랑합니다. 이제 함께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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