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깊은 통찰력으로 들여다보는 순간의 떨림 <사랑하고 싶은 시간>
2010-12-01
글 : 김태훈 (영화평론가)

지하철이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면? 이대역 다음이 신촌역이 아니라면? 혹은 신촌역을 그냥 통과한다면? 영화는 자동화된 우리의 일상을 깨는, 새벽 4시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로 시작한다. 임신을 한 동생의 양수가 터졌다는 전화를 받은 안나(알바 로르와처)는 남편을 깨우고, 새벽 4시에 처제의 양수가 터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 리 없는 남편은 카센터에 차를 맡겼다며 새벽 4시에 옆집 문을 두드린다. 동생은 예정대로 예쁜 아기를 순산한다. 그러나 안나는 다른 남자 도미니코(피에르 프란체스코 파비노)와 사랑에 빠지며 일상의 굴레를 벗어난다.

<사랑하고 싶은 시간>은 가정이 있는 남녀가 사랑하는, 이른바 ‘불륜’이라고 부르는 것을 소재로 한 영화다. 영화는 이러한 소재를 다루는 수많은 영화들의 서사적 문법을 그대로 따라간다. 첫 만남의 망설임과 두려움, 그리고 그 두근거림, 심연을 알 수 없을 만큼 나락으로 빠져드는 열정과 불붙는 사랑, 금기를 깨고 맞는 한순간의 여유와 행복, 그 뒤에 찾아오는 의심과 밝혀짐, 용서 그리고 일상으로의 복귀 등 감독은 애써 이러한 문법을 깨려고 하지 않는다. 서투른 실험 대신 깊은 통찰력으로 들여다보기를 하며 순간의 떨림을 잡아낸다. 안나와 도미니코가 처음 만나는 장면을 감독은 치장하거나 화려하게 꾸미지 않는다. 영화의 초반부를 안나의 가족과 그녀의 일상에 할애하기 때문에 파티 뒤 놓고 간 칼을 찾으러 온 도미니코를 우리는 안나의 일상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찰나의 한순간으로 무심히 바라보게 된다. 보들레르는 검은 상복을 입은 여자가 군중 속에서 불쑥 나왔다가 다시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에서 영원을 보았다. 영원하지만 순간일 수밖에 없는 그 시간이 안나와 도미니코의 삶을 뒤흔들어놓는다. 둘의 만남은 안나가 도미니코에게 선물 받은 귀걸이를 기차 안에 두고 오면서 끝을 맺는다. 얼핏 많이 본 장면 같고 상투적인 설정 같지만 영화는 상투적인 장면 속에서 깊은 여운과 울림을 만들어낸다.

영화의 원제를 영어로 번역하면 ‘what more do I want?’ 즉 ‘나는 무엇을 더 원하는가?’이다. 우리는 예정된 시간대로 오는 정확한 지하철을 타야만 한다. 그리고 이대역 다음에는 신촌역이 있다. 안나는 예정된 지하철을 타고 다시 신촌역에 내리지만 우리에게 묻는다. 자동화된 일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더 원하고 무엇을 더 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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