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잠재한 섬뜩한 사적 폭력의 영역 <여의도>
2010-12-01
글 : 김용언

여의도 증권사에 근무하는 황우진 과장(김태우)은 식물인간 상태의 아버지, 사채빚,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통받는다. 설상가상으로 믿었던 후배와 상사가 자신을 정리해고한 주역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절망하던 우진 앞에 어린 시절 친구 정훈(박성웅)이 나타난다. 우진은 술김에 “그 자식을 죽이고 싶다”고 털어놓고, 다음날 아침 후배가 변사체로 발견된다. 더불어 우진의 목을 조여오던 주변 인물들이 차례로 살해되고, 우진은 정훈이 범인일 거라고 짐작하며 두려워한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여의도>의 배경이, 그리고 제목이 굳이 ‘여의도’여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오프닝과 엔딩 장면에 각종 대교를 통해 서울 도심과 이어진 여의도의 풍경, 거리를 가득 채우는 샐러리맨, 낭만적인 벚꽃길 등이 아주 잠시 몽타주로 스쳐갈 뿐 여의도라는 계획도시의 특질은 이 영화에서 아무런 중요성을 갖지 못한다. 굳이 꼽는다면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세 가지 주요 직종(“여기 오는 사람들이 국회, 방송국, 주식쟁이지 뭐”) 중 하나인 증권사 직원이 주인공이라는 점뿐이다. 구조조정, 사채빚, 병원비, 가정불화 등은 여의도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역(그리고 서민과 조폭을 다룬 기존 한국영화)에 만연한 요소들로서 새삼스럽게 주의를 환기시키지 못한다. 곤경에 처한 주인공이 수수께끼 같은 친구의 도움으로 난관을 극복한다는 설정은 그리 놀라운 반전이 되지 못하고, 마지막에 이르면 고통을 소아병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로 충만한 변명으로만 들린다. “너 그동안 힘들었어. 넌 정의를 실현한 거야”라고 자위하는 사적 폭력의 영역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무의식이라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가장 섬뜩한 현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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