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그 남자, 조니 뎁과 그 여자, 안젤리나 졸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2010-12-06
글 : 김용언

CHERCHEZ LA FEMME. 그 여자를 찾아라. 모든 탐정소설의 전제는 이 문구에서 시작된다. <투어리스트>의 시작도 그러했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여인이 홀로 기차에 탄 다음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남자에게 접근한다면…. 착각하지 마시길. 그 여자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뭔가 숨기는 게 있거나 당신에게 뭔가 바라는 꿍꿍이가 있다.

미국 위스콘신주의 소심한 수학교사 프랭크(조니 뎁)는 연인과 헤어진 상처를 달래기 위해 이탈리아행 기차에 오른다. 그의 앞에 수수께끼 같은 영국 미녀 엘리제(안젤리나 졸리)가 앉고, 그녀는 자신과 함께 베니스에 머무르자고 제안한다. 믿을 수 없는 행운의 연속, 그녀와의 아찔한 키스까지. 그러나 프랭크는 곧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시와 추적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급기야 목숨마저 위협받는 상황에서, 프랭크는 이 기이한 사건의 중심에 엘리제가 연루되어 있고 자신 또한 국제적인 범죄자로 오인되었음을 알게 된다.

<투어리스트>에서 처음 만나다

<투어리스트>는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의 신작이다. 이 길고 낯선 이름의 감독이 누군가 하면, 음울하고 사려깊은 드라마이자 2007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인 <타인의 삶>을 연출한 그 사람이다. 제아무리 자국에서 큰 호평과 찬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토종 미국인이 아니면 할리우드에서까지 비슷한 명성으로 시작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폰 도너스마르크는 그것을 가능케 했다. <투어리스트>가 소피 마르소의 2005년작 <안소니 짐머>의 리메이크작이기 때문이다(각색은 <유주얼 서스펙트>와 <작전명 발키리>의 크리스토퍼 매커리, <고스포드 파크>와 <영 빅토리아>의 줄리언 펠로즈가 맡았다).

안젤리나 졸리는 2007년 즈음 폰 도너스마르크의 영화 <타인의 삶>을 본 다음 그에게 먼저 연락했다. 졸리는 언젠가 꼭 작품을 같이 하고 싶다고 신신당부했고, 3년이 지난 다음 그 꿈은 <투어리스트>로 이뤄졌다. “이 시나리오는 유럽적인 감수성으로 채워져 있다. 가끔 미국 감독이 찍은 유럽 스타일의 영화를 보면 거기에 뭔가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투어리스트>는 꼭 유럽인 감독이 필요한 영화였다. 난 폰 도너스마르크가 가장 적역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국제 무대를 배경으로 한 어두운 스릴러 시나리오 집필을 막 끝낸 폰 도너스마르크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기꺼이 원래의 차기 프로젝트를 미뤄둔 채 200개의 수로와 400개의 다리로 미로처럼 구성된 아름다운 도시 베니스에서 로맨스와 유머, 스릴이 공존하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투어리스트>를 찍었다. “<투어리스트>는 관객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영화다. 의자에 등을 붙이고 앉아 온갖 스트레스를 잊어버린 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배우와 함께 지구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소를 흥미진진하게 여행하는 셈이다!”

<투어리스트>의 핵심은 물론 두 주연배우다. 조니 뎁과 안젤리나 졸리. 두 사람은 각각 2010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서 선정한 가장 영향력있는 배우 1위와 12위에 올랐다. “난 안젤리나 졸리가 리타 헤이워드나 그레이스 켈리 같은 드문 타입의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그녀만의 여성스럽고 우아한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 없었다. 그녀는 에블린 솔트와 라라 크로프트 같은 터프한 액션 전사이거나 <체인질링> 같은 도전적인 드라마에 주로 출연했다. 난 <투어리스트>를 통해 안젤리나의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폰 도너스마르크) 그렇다면 조니 뎁은 어떨까?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와 팀 버튼의 페르소나로서 조니 뎁은 언제나 독보적이고, 누군가와 융화되거나 상대보다 약화되기보다는 차라리 세상의 원심력에서 튕겨져나오길 선택하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투어리스트>에서 비밀의 키를 쥐고 있는 건 그가 아니라 엘리제, 안젤리나 졸리다. 소심하고 평범한 남자를 연기하는 조니 뎁이 과연 어울릴까? “안젤리나가 연기하는 엘리제는 훨씬 많은 비밀을 갖고 있지만, 난 그녀의 상대역 프랭크가 상대역으로 약해 보이는 것도 싫었다. 안젤리나만큼이나 매력적이고 스마트한 배우가 필요했다. 바로 조니 뎁이었다. 그가 합류함으로써 프랭크는 사실상 실생활의 조니 뎁처럼 친근하면서도 유쾌한 캐릭터가 될 수 있었다.”(폰 도너스마르크)

베니스와 파리에서의 로맨틱 여행

이 슈퍼-슈퍼-A급 배우들을 거느리게 된 폰 도너스마르크는 최대한 두 배우의 매력을 극대화해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과거 성인들을 겨냥했던 세련된 멜로드라마 혹은 스릴러를 상상했다. 그러니까 다소 건조하고 냉소적인 원작의 느낌 대신, 캐리 그랜트와 그레이스 켈리 주연의 <나는 결백하다>(1955)라든가 캐리 그랜트와 오드리 헵번 주연의 <샤레이드>(1963), 스티브 매퀸과 페이 더너웨이 주연의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1968) 같은 영화들이 보여주었던 호화롭고 글래머러스한 느낌을 최대한 가미한 것이다. 그러면서 “<투어리스트>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떨어진 것만 같은, ‘우리가 거기서 살 수 있다면’이라고 바라게 되는 그런 세상을 형상화한다”라는 안젤리나 졸리의 말처럼, 혹은 “원거리에 배치되는 엑스트라에게까지도 주연배우들만큼이나 신경쓴 의상을 입힘으로써 스크린 어디에서나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폰 도너스마르크의 장담처럼 <투어리스트>는 베니스와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온갖 판타지가 찬란하게 꽃피는 그런 영화가 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조니 뎁과 안젤리나 졸리가 각자의 무수한 필모그래피 중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두 사람은 프랑스 남부에 각기 저택을 소유하고 있는데, 양쪽 저택 사이의 거리는 차로 한 시간도 채 안 걸린다고. 그런데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우리 두 사람은 그리 사교적인 타입이 아니니까. 둘 다 일단 집에 돌아가면 콕 박혀서 안 나오는 사람들이다.”(안젤리나 졸리) 두 사람이 <투어리스트> 출연 결정을 내린 이후의 첫 만남을 회상하는 에피소드가 흥미롭다. 안젤리나 졸리가 조니 뎁의 작업실을 찾아갔고, 그녀는 조니 뎁을 기다리며 그가 찍은 사진과 그림들을 구경했다. “주로 조니의 연인 바네사 파라디와 아이들이 담긴 아름다운 작품들이었다. 그는 진정한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조니가 걸어들어왔고,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상상했던 조니 뎁 그대로였다.”(안젤리나 졸리)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에 관한 기사는 무수히 많다. 두 사람은 우리 시대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 같은 커플이니까. 그녀는 그 정도로 빅스타지만 난 그녀와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짐작도 못했다. 나는 불안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어어어어엄청나게 다행이었다. 안젤리나에게는 꽤 심술궂은 유머 감각이 넘쳤고, 그건 다소 놀랍기도 했지만 기분 좋은 깨달음이었다. 안젤리나는 진짜 멋쟁이다.”(조니 뎁)

<투어리스트>는 지금까지 제작사 소니의 고위 간부들에게만 공개된 상태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모를 일이지만, 시사가 끝난 뒤 모두 웃음꽃을 피우며 만족스럽게 헤어졌다는 후문이다.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했다던 두 톱스타의 화학작용이 과연 <투어리스트>를 로맨틱하고 멋지게 장식했을 것 같다.

사진제공 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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