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의 인디라마]
[김영진의 인디라마] 록 투어의 야생 버라이어티
2010-12-09
글 : 김영진 (영화평론가)
밴드 YB의 미국 록 페스티벌 ‘워프트 투어’ 유랑기 담은 다큐멘터리 <나는 나비>

록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어떤 정형을 떠올리게 된다. 마틴 스코시즈의 <샤인 어 라이트>처럼 록 콘서트 자체의 현장감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려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시도도 있었지만 대개는 콘서트 현장과 백스테이지에서의 일상을 교차시키는 구성이 일반적이다. 정흠문의 다큐멘터리 <나는 나비>도 비슷한 골조를 갖추고 있다. 다만 한국 관객 입장에선 특이한 로컬리티 정서를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데 한국의 유명 밴드 YB가 미국에선 갓 데뷔한 무명밴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 최대 록 페스티벌인 ‘워프트 투어’에 한국 밴드로는 최초로 참가해 그중 7개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한다. 순회공연이라고 하면 거창할 것 같지만 투어마다 여러 무대가 마련돼 있고 이들은 유명 밴드가 공연하는 메인 공연장 외에 쇼윈도처럼 차려진 가설무대에서 20분 내지 30분 주어진 시간 동안 자신들의 기량을 불특정 다수의 관객에게 증명해야 한다.

실력이 없으면 바로 퇴출되는 것이야 정당한 일이지만 이런 콘서트 형식이라면 거의 전투에 가깝다. 연주 실력 이전에 홍보도 중요하고 수많은 밴드가 공연하는 와중에 무명밴드가 그것도 이방의 밴드가 주목받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나비>는 화려한 록 콘서트 영화가 아니라 윤도현 밴드가 새로 시작하는 어떤 기점에 자연스레 초점을 맞추게 되는 자기 발견 영화에 가깝다. 이는 유명한 서구의 어떤 록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아울러 (기획, 연출된 것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윤도현 밴드의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한국계 스무살 여대생이 백인 여성친구와 함께 차를 몰고 와 YB의 피날레 공연인 LA 투어를 참관하는 과정이 YB의 투어 여정과 교차로 맞물린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그들은 YB의 샌디에이고 투어를 놓치고 LA 공연에 극적으로 참가해 소원을 푼다. 가장 주목을 끌었던 LA 공연에서도 관객이 수십명 남짓인 이 공연전투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열광적인 모습은 확실히 클라이맥스의 방점을 찍기는 한다. 그렇더라도 뭔가 장식적 느낌이 강하다.

자기 발견 영화에 가까운

그보다는 윤도현 밴드의 심심하고 힘든 투어의 일상을 따라가는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훨씬 재미있었다. 한국에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곧잘 볼 수 있는 아이돌인 윤도현이 진짜 로커이고 그와 함께하는 밴드의 다른 멤버들도 록 스피릿이 있는 사람들이구나, 라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들의 음악을 제대로 듣고 싶어졌다. 매체에서 소비되는 이미지가 아닌 다른, 백스테이지에서의 그들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확실히 이것은 다큐멘터리의 미덕이다. 아울러 <나는 나비>는 광대한 음악산업에서 여기저기서 떠드는 글로벌화라는 것이 얼마나 도달하기 힘든 목표인지를 웅변하는 한편, 그 가혹한 생존경쟁에서 이리저리 구르는 가운데 진짜 록정신을 체험하는 멤버들의 고양되는 마음도 함께 담는 역설을 보여준다. 윤도현은 영화 속 한 장면에서 ‘글로벌화한다는 게 이렇게 힘든 건줄 몰랐어’라고 농담 섞어 투정하며, 드러머인 김진원은 ‘이게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대륙인가’라고 두려움 섞인 불안을 토로한다. 그 와중에 이들은 가위바위보로 운전순번을 정해 장거리 주행의 연속인 투어를 감내하면서도 여정 곳곳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며 멤버십을 강화한다.

워프트 투어는 서양식 파티와 같다. 권력에 따라 자연스레 위계가 정해지는 잔치다. 주빈이 아닌 사람들은 구석에서 맴돌며 필사적으로 자신을 알리는 사교적 화술에 매달려야 하는 파티의 무명객처럼 윤도현 밴드는 자신들을 알아주지 않는 관객을 상대로 투어장 구석에서 외롭게 연주한다. 그들의 투어 첫 공연에선 아예 멈춰서는 관객이 보이질 않고 공연이 끝날 무렵 윤도현의 말대로 그들의 공연 청중은 단 두명에 불과했다. 이들의 첫 공연은 보는 사람들도 아슬아슬한 심정을 느낄 만큼 절박하고 긴장에 차 있는데 무명의 소외감을 느끼는 만큼 이들의 공연은 더 격렬하고 빠른 템포로 치러진다. 황급히 공연장에서 달아나려는 사람들처럼 이들은 미친 듯이 연주하고 모든 연주는 독백처럼 공허하게 공전한다. 두 번째 공연부터 이들의 공연은 완급을 조절하고 청중과의 관계를 의식하지만 그래봤자 여전히 이들의 공연에 주목하는 이들은 소수다.

<나는 나비>는 그때부터 활기가 더 생긴다. YB는 무명의 소외감이 몸에 붙으면서 야생성을 재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처럼 몸과 마음이 바빠지고 투어의 잔혹한 위계질서는 이들에게 에너지를 준다. 영화가 전개될수록 YB 멤버들의 육체적 피로는 깊어지지만 그와 반비례해 멤버들의 에너지는 충만해진다. 몸을 많이 쓸수록,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 에너지가 충만해지는 이 반비례의 역학을 확인하는 것은 영화 속 윤도현의 말대로 ‘록은 투어다’라는 말에 집약돼 있다. 그들은 야생에서 히피들처럼 떠돌며 아무에게나 말을 걸고 한 사람이라도 들어주면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로 공연을 준비하고 신명나게 연주한다. 이들이 자신들을 의식하지 않고 록 투어의 야생적이며 집단적인 활기에 몸을 맡기자 이들은 그 투어의 주인공이 아니라 그 투어의 일원이 된다.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고 외롭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무명의 소외감이 에너지로 전환되고

투어 후반으로 갈수록 자잘한 사고가 끊이질 않는 가운데 연주할 드럼스틱이 든 가방을 잃어버린 드러머 김진원은 손에 익은 자기 악기가 사라졌다는 것에 잠시 낙담하지만 곧 다른 록밴드의 드러머에게 부탁해 악기를 빌리고 역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신나게 연주한다. 베이스를 치는 박태희는 어디서나 이물감없이 사람들을 대하고 놀라운 적응력으로 낯선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과묵하고 수줍은 기타리스트 허준은 다른 멤버들의 친화력을 은근히 부러워하면서 내색하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 동화된 에너지를 무대 위에서 연주를 통해 뿜어낸다. 어디에도 정박하지 않고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으며 안정된 삶의 기율에서 총체적으로 이탈하는 해방감이 주는 에너지를 YB 멤버들은 고단한 투어 과정에서 충전하고 스스로 놀라워한다. 한국에서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밴드이자 장수 밴드인 YB가 미국에서 새로 시작하며 갖게 되는 이 록에 관한 초심이 정글과도 같은 음악산업의 적자생존 논리에서 관철되는 것이 재삼 흥미로운 역설이다.

<나는 나비>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으로 밀고 갈 수 있는 골조가 다 갖춰진 상태였다. 앞서 말한 대로 한국계 미국 여대생이 투어의 피날레에 동참하게 되는 서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의 선택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실례지만 그 서사가 극적으로 그만큼 필요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계속 의문이 들었다. 그보다는 투어 과정에서 YB 밴드가 맞부딪치는 곤란과 그 와중에도 그들이 상황을 즐기는 모습들이 훨씬 재미있었다. 일례로 투어 도중 베이시스트 박태희가 투숙 중인 모텔에서 심야에 새로 산 앰프를 낑낑대며 자기 방으로 끌고 들어와 조용히 연습해보는 장면들이 훨씬 재미있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미디어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소비되는, 심지어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이미지로 덧칠되는 것을 포함해서, YB 밴드의 실제 면모를 드물게 엿볼 수 있는 미덕이 있다. 정박과 분할의 강박이 심한 한국사회에서 록은 태생적으로 체질에 맞기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호연지기라고 할 만한 것을 관념적으로 아니라 육체적으로 체험하기 힘든 환경적 조건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은 살고 있다. 록의 야생적인 에너지가 클럽에서 제한적으로 소모되는 환경에서 광활한 대륙을 여행하며 유랑의 정서를 몸으로 체득하는 젊은 청중의 기를 받으며 재충전되는 어떤 과정을 보는 것은 좀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에너지가 음악산업의 정교한 제도적 통제 속에서 진행되는 아이러니를 느끼기도 전에 <나는 나비>는 부자유 속의 자유를 이중으로 느끼며 웅비하는 어느 록 밴드의 기상을 간접 체험하게 해준다. 그것만으로도 이 록 다큐멘터리를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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