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페미니즘 비디오 비엔날레, 12월7일부터 18일까지
2010-12-06
글 : 이현경 (영화평론가)
<뜻밖의 응답>

여성주의 대안 영상 축제인 ‘페미니즘 비디오 액티비스트 비엔날레 2010’(이하 파비2010)이 12월7일부터 18일까지 열린다. 여성 감독의 작품이거나 여성문제를 주제를 한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는 익숙하지만 여성주의 대안 영상이라는 말은 다소 생소할 수 있다. (사)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이 주최하는 파비2010은 국내 여성주의 예술가와 문화행동가에게 용기를 주자는 취지에서 생겨났다. ‘대안’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여성의 시각으로 본 예술담론, 사회·정치적 액티비즘, 여성주의적 영상코드를 소개하는 국내 유일의 비엔날레다. 이번 파비2010의 핵심 개념은 ‘아티비스트’로 아티스트와 액티비스트의 합성어다. 아티스트로서의 창작활동과 액티비스트로서의 실천을 함께 생각하기 위해 고안된 이 단어처럼 여성주의 창작자들의 활동을 예술계에 가두지 않고 현실 속에 위치시키는 것이 이 축제의 목표다.

파비2010에서는 영화와 미술의 중간 영역에 있는 작업들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장르 구분 없이 여성 작가 네명의 작품을 모은 ‘페미니즘 아티비스트전’은 이번 파비의 성격을 대표하는 기획이다. 미술을 벗어난 영역까지 활동 폭을 넓히고 있는 정은영 작가의 <뜻밖의 응답>은 여성 국극을 통해 젠더의 문제를 질문한다. 1940~60년대 번성했던 여성 국극은 모든 배역을 여성이 소화한다. 화면은 남자 역할을 하는 배우가 분장을 하는 모습과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모습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여성 국극에서 위반적 젠더의 표상을 발견했다는 작가는 이런 작업을 통해 젠더라는 체계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수행적임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미술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싱글채널 비디오 작가 심혜정은 신도시에 살면서 결혼 생활과 신도시 아파트를 소재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리싸이클링>은 제목처럼 신도시 아파트의 안과 밖에서 반복되고 순환되는 작가 자신의 욕망을 세개의 에피소드로 담아낸 영상물이다. 딸아이의 옷을 계속 입어보는 주부의 뒷모습을 말없이 포착하거나, 엄마와 두 아이가 서로의 다리를 묶고 아파트를 달리는 모습을 따라가는 비디오는 어떤 코멘트없이 사실적이고 일상적인 영상을 기록한다. 아파트에서 번지점프를 시도하는 마지막 에피소드는 자신의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묶여 있을 수밖에 없는 작가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여성적 감수성을 그려내는 박지연 감독의 애니메이션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은 도시 빈민으로 살아가는 여자가 남자친구와 이별하는 3년의 세월을 동화적인 설정 안에 풀어놓은 독특한 작품이다. 크레인에 의해 공중에 들린 집은 여주인공이 처한 심리적, 환경적 상황이 어떤 것인지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2008년부터 성폭력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작업해오고 있는 최미경 감독은 <놈에게 복수하는 법>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왜 무기력하게 현실에서 도피하고 있는지 묻는다. 감독은 자신을 성추행했거나 성희롱한 ‘놈’ 세명을 차례로 만나기로 계획하지만 생각보다 어렵다.

<리싸이클링>

‘아시아 여성 작가 특별전’에는 박경희 감독과 일본의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초대되었다. <카모메 식당> <안경> 등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오기가미 감독의 데뷔작 <요시노 이발관>은 그녀의 슬로 무비 1탄이다. 한편의 유쾌한 성장영화이면서 전체주의라는 무거운 정치적 주제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문제작이다. 마을 소년 모두가 똑같은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 도쿄에서 한 소년이 전학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머리 모양에 대담하게 의문을 던지는 도시 출신 소년 덕에 마을 아이들은 조금씩 새로운 세상을 엿보게 된다. 페미니즘 소수자 국제 심포지엄, 페미니즘 액티비스트 워크숍 등 총 5개 섹션으로 구성된 풍성한 프로그램이 준비된 이번 축제는 미디어공간 아이공과 서울아트시네마에 마련된다. 지금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여성주의 예술과 액티비즘의 현주소를 확인해볼 수 있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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