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살아요! 살아 있으면 다 돼요.” 소방관인 구상(송창의)은 사고현장에서 ‘왜 자신을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느냐’고 원망하는 이들에게 늘 그렇게 답한다.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사실을 숨기고 있는 구상에게 ‘삶’은 지극히 간절한 바람이다. 자신이 죽으면 사고로 인해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아내 순영(서지혜)과 어린 딸 슬기(주혜린)는 어찌할 것인가. 가망없는 수술을 앞두고서 구상은 절친한 동료인 석우(여현수)가 오랫동안 순영을 짝사랑했음을 알게 되고, “간절히 원해도 이뤄지지 않을” 자신의 삶을 석우에게 대신해 달라고 부탁한다.
멜로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시한부 삶은 극적 갈등 구조를 손쉽게 확보하기 위한 장치다. 이는 대부분 절대적인 사랑에 대한 찬미로 귀결된다. <서서 자는 나무> 또한 이러한 통속의 궤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죽음을 앞둔 남자는 혼자 괴로워하고, 그것을 모르는 가족은 조금씩 거리를 두려는 남자의 배려에 불만을 토한다. 석우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려는 구상의 행위 역시 변치 않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다. 문제는 고귀하고 특별한 그들의 사랑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구상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일찌감치 예상 가능하다. 구상은 딸의 마지막 생일을 뒤로하고 기어코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그 순간 확고해지는 것은 오직 ‘그들만의’ 사랑이다. <서서 자는 나무>는 시한부라는 설정을 일종의 쇼크처럼 사용하거나 에피소드들을 나열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만의 사랑’을 설득할 다른 어떤 것 또한 갖고 있지 않다. 행복한 한때를 재연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더없이 자연스러우나 파국의 도래 앞에서 그들이 내보이는 감정의 밀도는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