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죽음과 함께 방문한 미스터리 스릴러의 대가
2010-12-14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클로드 샤브롤 추모영화제, 12월14일부터 26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올해 9월12일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영화감독 클로드 샤브롤을 기리는 ‘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가 2010년 12월14일(화)부터 26일(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상영작은 <미남 세르쥬>(1958), <사촌들>(1959), <마스크>(1987), <지옥>(1994), <의식>(1995), <거짓말의 한 가운데>(1999), <초콜릿 고마워>(2000), <악의 꽃>(2003) 총 8편이다.

데뷔작 <미남 세르쥬>와 두 번째 작품 <사촌들>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전자가 시골에 온 도시 사람의 이야기라면 후자는 도시에 온 시골 사람의 이야기다. 두편은 샤브롤의 초기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영화들이니 이 자리에서는 내용 대신 다른 식으로 소개하는 편이 새롭겠는데, 가령 이 영화들이 나왔을 당시에 동료들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을까. 에릭 로메르는 “<무방비 도시>에서 거리로 나아간 이탈리아의 그것처럼 샤브롤과 함께 우리는 대지로 귀환한다”고 썼다. 한편, <사촌들>을 본 장 뤽 고다르는 라퐁텐의 우화 시골 쥐와 도시 쥐의 이야기로 영화를 비유하면서 “레네가 돌리숏을, 그리피스가 클로즈업을, 오퓔스가 프레이밍의 사용을 발명한 같은 방식으로 샤브롤은 패닝숏을 발명했다”고 선언한다. 궁금하다. 어떤 장면이 <미남 세르쥬>를 본 에릭 로메르에게 대지로의 귀환을 말하게 하고 또 <사촌들>을 본 고다르에게 패닝숏의 발명을 선언하게 한 것일까.

<미남 세르쥬>

그 다음 상영작들은 몇 십년을 건너뛴다. 우리에게 영화 <시네마 천국>의 아저씨로 오래 기억되고 있는 프랑스의 배우 필립 누아레가 주인공 중 한명인 <마스크>는 텔레비전 쇼의 유명 진행자 크리스티앙과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그의 집에 잠시 기거하는 작가 롤랑, 그리고 크리스티앙의 양녀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리고 <지옥>은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한 뒤 어느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휴양지를 운영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어느 날부터인가 부인이 젊은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불안증에 시달린다. 두편 모두 샤브롤의 대표작으로 흔히 꼽히진 않지만, <마스크>에서는 위선이, <지옥>에서는 불안이 샤브롤의 인물들을 덮쳐 이 영화들을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샤브롤의 영화에서 이런 위선이나 불안은 종종 부르주아 세계의 것이며 그건 마침내 파국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샤브롤의 작가적 귀환을 알렸던 <의식>은 부르주아의 파멸의 시간을 가장 명료한 방식으로 보여준 영화로 꼽힌다. 풍족함이 넘치는 어느 가정에 들어온 가정부, 그녀의 유일한 친구인 마을 우체국 직원. 그들이 만들어내는 라스트신에서의 충격적이지만 무미건조한 사건은 오래도록 샤브롤의 이름 아래 회자되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들 당시 샤브롤 자신도 “이 영화는 확실히 계급전쟁의 도식적 관망을 묘사한다”고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이때 그는 더 중요한 말도 한 것 같다. “영화에서 나의 시작점은 이야기와 인물 사이의 관계이고 나는 인물과 인물 사이의 충돌이 일으키는 구조를 믿으며 내가 수많은 스릴러를 만들긴 했어도 플롯에는 정말 관심이 없고 관심있는 것은 미스터리, 인물들의 고유한 미스터리”라고 했다. <거짓말의 한 가운데>에서는 어느 어촌 마을의 살인 사건으로, <초콜릿 고마워>에서는 이혼했다가 재결합한 부부와 그들을 찾아온 어떤 젊은 여인으로, 그리고 <악의 꽃>에서는 세대를 거치며 이어져온 집안의 업보가 드디어 또 한번 반복되는 것으로 그 미스터리는 시작되거나 지속된다.

샤브롤의 영화에서 그 어떤 방문은 종종 되돌리기 어려운 사건의 도착을 함께 알리곤 했다. 이번 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를 찾은 8편의 영화의 방문도 실은 그의 죽음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사건과 함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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