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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무성] 우리의 재즈 1세대를 알렸으니까
2010-12-16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최성열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 만든 재즈 전문가 남무성 감독

남무성 감독의 본업은 재즈 평론가이자 재즈 전문 잡지의 편집인이며 그리고 재즈 음반 프로듀서다. 한마디로 그는 재즈인이다. 영화로 재즈를 껴안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 그가 연출한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도 당연히 그런 재즈 사랑의 연장선에 있다. 이 영화는 한국의 재즈 1세대 음악인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현재를 담고 있다. 말하자면 후배 재즈인이 선배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헌사인 셈인데, 여기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그는 어떤 마음으로 이런 큰 선물을 기획하게 된 것일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버전과 개봉 버전이 많이 다른가.
=전반적으로 그때가 좀더 산만했다. (웃음) 큰 신이 들고 난 건 없지만 영화적인 흐름을 많이 다듬었다. 주인공인 재즈 1세대에 좀더 포커스를 맞춰서 강조하기로 했다. 그들의 솔로 음악 신을 좀더 집어넣었고 전반적으로는 담백하게 만들려고 했다.

-평소에 재즈 1세대와는 어떤 관계였나.
=알고 지낸 지가 꽤 됐다. 20살 때 내가 재즈 클럽에서 판돌이를 할 때 선생님들은 매일 밤 공연을 하셨기 때문에 그때부터 인연이 있었고, 나중에는 내가 발행하던 재즈 잡지에서 선생님들에 관한 기사도 실었다. 그러다 3~4년 전쯤부터 한분씩 돌아가셨다. 그분들의 추모제 사회를 보면서 이분들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재즈 이론가 이판근 선생님 연구실이 철거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을 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처음에는 영화를 하겠다는 마음은 없었고 책을 쓸까, 만화를 그려볼까 하는 정도였다. 뭔가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영화로 결정했다. 제작비가 얼마나 될까 싶어 인터넷을 뒤졌더니 <용서받지 못한 자> 제작비가 3500만원이라고 나오더라. 어, 이 정도면 어떻게 해볼 수 있겠구나 해서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웃음) 그래도 전에 만화책을 내고 잡지를 낸 경험이 영화 만드는 데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이분들을 모시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같은 기획으로 영화를 하겠다고 했다가 두어번 엎어졌었다고 하더라. 선생님들은 그걸 가장 걱정하셨다. 중간에 또 엎어지는 것 아니냐고.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 선생님을 섭외하는 게 특히 어려웠다. 피아노 연주하시는 신관웅 선생님은 안 한다고 하시다가 언론에 알려진 걸 보고 나서야 하시겠다고 마음을 바꾸셨고. (웃음)

-영화를 본 주인공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원래 표현을 잘 안 하는 분들인데 너무들 좋아하신다. 영화에서 “나는 음악을 할 때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따뜻하게 말씀하시는 분이 계신데, 클라리넷을 연주하시는 이동기 선생님이다. 이분의 별명이 피노키오인데, “내가 무슨 90살인 것처럼 나왔다”며 즐겁게 농담하신다.

-주인공들이 카메라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마치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지금까지 기다려온 사람들 같아 보였다. 특히 퍼쿠션과 드럼 연주자인 류복성 선생님이 그렇다.
=그런 것 같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류복성 선생님에 대해 많이 묻는다. 류 선생님 같은 캐릭터가 영화에 있는 게 다행이다. 류 선생님은 에너지가 넘치신다. 그분 말씀만 따로 담아도 미니시리즈 5부작 정도는 나올 거다. 영화 찍는 도중에는 어떻게 찍어야 한다고 감독까지 하셨고 콘티까지 다 생각해오셨다. (웃음) 영화에 담긴 그대로 정말 그렇게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며 찍었다. 류 선생님의 얘기를 들어줄 친구들로 고려대학교 재즈 동아리 학생들도 급하게 불렀다. 그러고 카메라 픽스해놓고 3시간 동안 찍은 거다. 일단은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다 찍어드린 다음 쓸 만한 장면을 고르는 쪽을 택했다. 영화 찍는 과정 자체를 재미있어하시는 것 같았다. 다른 분들도 얘기를 많이 해주셨다. 언젠가는 터뜨리려고 준비해오신 것처럼 말이다. 그분들의 말씀을 들어드리는 것도 하나의 과정이라고 여겼다.

-은퇴한 선생님 한분을 지인 몇분이 찾아가고 그들이 술상 앞에서 즉흥적으로 함께 연주하는 것으로 설정된 장면이 있다.
=그게 그분들의 ‘끼’인 것 같다. 그 장면에서 내가 선생님들께 악기를 꺼내는 순서를 설정해드리긴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원래 생각했던 설정은 사실 그게 아니었다. 은퇴한 선생님 한분을 다른 지인 한분이 혼자 만나러 가셔서 단둘이 연주하는 장면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들은 나머지 선생님들이 나도 가자, 나도 가자 하셔서 나온 장면이다. 원래는 쓸쓸한 분위기를 생각했는데 정반대로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나온 거다.

-만들고 나니 느낌이 어땠나.
=내 생각에 재즈가 대중화되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영화를 택한 이유는 어느 면에서 영화의 대중적인 파워에 기대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선생님들과 해온 작업 자체에 의의가 있다고 본다. 적어도 이런 중요한 분들이 있다는 걸 알리는 목적만큼은 달성한 것 같다. 만들기를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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