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당신 도대체 어떤 사람이야?
2010-12-23
글 : 김태훈 (영화평론가)
<이층의 악당>에서 보이는 손재곤 감독의 문제의식, 그리고 변화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 대우(박용우)는 4명을 죽이고도 멀쩡해 보이는 미나(최강희)에게 “당신 도대체 어떤 사람이야?”라고 묻는다. 이 질문에 미나는 같은 레스토랑에 있는 한 여자를 응시하며 “저 여자랑 똑같아요.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고, 웃고, 인생을 즐기고 싶은 그런 평범한 사람”이라고 답한다. 평범한 것과 평범하지 않은 것, 정상인 것과 정상이지 않은 것 사이에서 영화는 우리의 기대를 깨고 웃음을 만들어내며 우리에게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정상이 아닌지를 되묻는다. 대우는 겉으로는 멀쩡한 대학 강사지만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으며 연애는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미나는 사람을 4명이나 죽였지만 배용준을 좋아하고 자기를 칭찬해주는 말에 수줍음도 타고 부끄러움도 많다. 사랑하지만 언제 칼을 맞을지 몰라 검도 호구를 가슴에 차고 연인을 만나야 하는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달콤, 살벌한 연인>은 제목에서도 암시하듯이 그것이 달콤한 것인지 아니면 살벌한 것인지 우리에게 그 가치를 다시 한번 묻는다.

<이층의 악당>도 <달콤, 살벌한 연인>과 마찬가지로 범죄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문화재 밀매 범죄자인 이층에 사는 악당 창인(한석규)은 <달콤, 살벌한 연인>의 미나처럼 정상인보다 더 정상인처럼 말끔하다. 그는 준수한 외모에 목욕탕에 온 것 같이 울려퍼지는 편안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주변의 정상인들이 더 비정상처럼 보인다. 집주인인 연주(김혜수)는 <달콤, 살벌한 연인>의 대우처럼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으며 불면증에 시달리고 딸한테 자기 입으로 자기가 비정상이라고 말한다. 중학생인 연주의 딸 성아(지우)는 어릴 적 우유 소녀로 귀여움과 사랑을 받았지만 지금은 외모로 인한 콤플렉스로 왕따를 당하며 사는 것이 힘들다고 자살을 시도한다. 그 밖에도 자신의 현재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할머니란 호칭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옆집 할머니, 100억원을 횡령한 겉만 번지르르한 재벌 2세, 융통성없는 그의 부하 직원, 160cm가 안되는 키에 콤플렉스가 있는 조폭, 남자지만 여자 이름을 가지고 있는 정신과 의사 등 <이층의 악당>에는 겉은 정상인처럼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전혀 그렇지 못한 인물들로 가득하다.

구조에 대한 문제, 감시에 대한 문제

이러한 시각은 서사의 진행에서도 드러난다. 영화 초반 이야기의 중심은 도자기를 둘러싼 창인의 범죄 행각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창인의 시도들이 실패를 하고 영화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주도권은 연주에게 넘어간다. 연주가 보여주는 짜증과 돌발적인 행동들이 빛을 발하고 악당인 창인은 악당답지 않게 무기력하게 지하 창고에 갇힌다. 창고에서 나온 창인이 연주에게 안겨 그녀의 행동을 저지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당하는 쪽은 오히려 창인이 아닌지, 과연 누가 악당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러한 선과 악, 정상과 비정상의 가치 판단에 대한 감독의 문제 제기는 사회 구조적인 차원으로 연결된다.

한두살 어려 보이기를 좋아하는 한국의 문화에 대해 창인은 유럽연합(EU)의 기준으로 나이를 보자고 말한다. 정심이라는 이름이 남자한테 어울리는 이름이냐는 연주의 질문에 정신과 의사는 집안이 심자 돌림이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연주의 가게에 와서 남편이 있을 때는 유니크한 것들이 있더니 지금은 없다고 불평하는 손님에게 유니크한 것만 찾다가 유니크하게 남편이 죽었다고 말한다.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사회, 가족, 대중 등 구조에 있음을 암시한다. 당위성에 대한 구조적인 접근은 전작인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부터 이미 전제되어 있었다. 사람을 왜 죽였냐는 질문에 미나는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기 때문에 죽였다고 말한다. 미나는 결국 누군가를 죽일 수밖에 없는 한국을 떠나 해외로 도피한다. 대우와 미나가 다시 만나는 곳은 한국이 아니라 싱가포르다. 구조에 대한 문제는 감시에 대한 문제로 연결된다.

<달콤, 살벌한 연인>과의 차이

<이층의 악당>은 전작에서 보여줬던 이러한 문제를 확장하며 CCTV까지 등장시킨다. 연주의 집은 늘 감시를 받는다. 보안회사의 감시에, 옆집 할머니의 감시에, 창인의 감시까지. CCTV를 연상케 하는 옆집 할머니가 없는 곳에선 으레 CCTV가 존재한다. 재벌 2세의 사무실이며 아파트 복도며 거리 곳곳에 CCTV가 등장한다. 감시받는 집에서 연주는 불면증에 시달린다. 편안하게 잠을 자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그녀는 점점 약과 술에 의존하게 되고 비정상이 되어간다. 연주의 딸도 학교라는 구조 속에서 감시를 받는다. CCTV가 없으면 동영상 카메라나 휴대폰 카메라에라도 찍힌다. 연주가 편안히 잠을 자게 되는 것은 집을 이사하고 나서부터다. 감시는 보는 자와 보이는 자를 전제로 한다. 시선은 권력이다. 연주의 집을 감시하던 창인은 시선의 권리를 뺏긴 뒤에 연주가 그랬던 것처럼 불면증에 시달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연주 모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연주의 집에서 창인이 잠을 청하는 것으로 끝난다. 잠을 청하면서도 창인은 자신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연주 모녀의 이야기에 따라 편안한 얼굴을 보이다가도 불편한 얼굴을 보이기도 한다. 창인은 마지막까지도 편안하게 자지 못한다. 감시는 공간의 문제와 뗄 수가 없다. <달콤, 살벌한 연인>과 <이층의 악당>은 그런 점에서 같은 구조를 보여준다. <달콤, 살벌한 연인>은 미나가 이사를 오면서 서사가 진행되고 미나가 이사를 가면서 그들의 연애담도 마무리된다. <이층의 악당>도 창인이 이사를 오면서 시작되고 연주가 이사하면서 마무리된다. 대우와 창인 모두 위층에 살고 있으며 둘 다 그녀들의 공간에 침범하지만 여전히 이방인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이처럼 <이층의 악당>은 전작인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 감독이 던진 문제의식을 그 연계선상에서 이어받으면서 확장한다. “당신 도대체 어떤 사람이야?”라는 질문이 대변하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는지,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는 그 사회의 가치는 정말로 맞는 것인지 감독은 질문한다. 감독은 인물들의 설정부터 흔히 우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맞고 그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허문다.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 우리가 금기시하는 것들은 쉽게 말해지거나 아주 쉽게 깨져버린다. 살인이라는 금기를 깨는 미나는 아주 평범한 여성이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사람이 알고 있는 지식은 쓸데없는 것이거나 보잘것없는 것일 뿐이다. <이층의 악당>에서도 우리가 금기시하는 조폭은 키가 160cm도 안되며 창인한테 어른들 일에 참견말라며 엉덩이매를 맞는다. 전과가 많은 문화재 밀매업자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평범한 여성에게 오히려 사기를 당한다. <이층의 악당>은 인물들의 설정에서부터 전작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내려는 욕심을 부리지만 오히려 더 산만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연주를 좋아하는 순경의 에피소드는 사족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옆집 할머니도 왜 등장하는지 그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재벌 2세와 그의 부하 직원, 조폭인 송 실장까지 모두 캐릭터가 살아 있지 않아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탄탄한 응집력을 흐트러트리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응집력을 흐트러트리는 요소들

<달콤, 살벌한 연인>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는 그 골계(comic)에 있었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한 문제의식이 적절한 인물과 상황 설정에 맞물려 그 충돌과 불협화음 속에서 관객의 기대는 여지없이 배반당했고 불일치와 비일관성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힘은 쉴새없이 웃음과 재미를 만들어냈다. <이층의 악당>에서 감독은 대사와 행동에서 쏟아져나오는 골계 대신 다른 변화를 추구한다. 감독의 변화가 성공적이었는지, 앞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것은 변화해가는 감독의 몫이고 지켜보는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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