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말이죠. 대체 뭐가 그리 탐나서 자꾸 지구를 침공해대는 겁니까 당신들은.
=우리가 처음도 아닌데 왜 저를 걸고넘어지세요.
-처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SF팬들도 조금 착각하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영화 역사적으로 봐도 지구를 전면적으로 공격하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는 사실 그리 많지 않아요. 어쩌다 하나씩 뚝 떨어져서 사냥이나 하다가는 영화는 있어도 말이죠.
=어머나. 그런가요? 하긴 옆동네 행성에서 지구를 침공했다가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딱 세번 들어봤네요. 한번은 컴퓨터 바이러스 때문에 실패하고, 또 한번은 감기 바이러스 때문에 실패하고, 또 한번은 뭐래더라, 알고 보니 지구의 ‘물’이라는 액체가 치명적인 독인 줄 모르고 실패했다던가…. 바보 같은 놈들. 하여간 그 행성 놈들은 말만 번지르르하고 평소에도 제대로 하는 게 없었죠.
-그러게나 말입니다. 제대로 연구조사 좀 진득하게 한 뒤에 침공하든가 말이지.
=그래서 우리는 다른 방법을 택했습니다. 섬광으로 인간들을 다 쓸어담는 거죠.
-아… 일종의 청소군요. 제가 얼마 전에 알레르기 방지용이라는 강력 진공 청소기를 하나 샀는데 말이에요. 이게 참 기똥차더라고요. 카펫 속에 숨은 미세먼지는 물론이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진드기까지 다 흡수한다더라니까요.
=기자 양반 똑똑하네. 바로 그겁니다. 빈티지 시장에서 꽤 근사해 보이는 페르시안 카펫을 하나 샀어요. 근데 진드기가 너무 많아서 도통 쓸모가 없어요. 그럴 땐 진공 청소기로 진드기만 싹 빨아버리면, 하하! 훌륭한 새 카펫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지구가 새 카펫이라는 건가요?
=말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깁니다.
-그래서, 그 좋은 기술력을 보아하니 지구에 살고 싶어서 찾아온 건 아닌 모양이고. 지구를 침공한 정확한 이유는 뭡니까. 혹시 인간들만 싹 제거한 뒤 은하계 연방 부동산에 좋은 값 받고 팔아넘길 생각인건 아니겠죠. 행성없이 떠도는 외계인들에게 장기로 전세를 내준다거나 뭐 그런 거.
=지구 따위를 누가 삽니까. 요즘 당신들 행성 보일러가 고장나서 여름에는 절절 끓고 겨울에는 냉방이라던데, 그거 고치기 전에는 전세는커녕 싸게 월세도 못 받아먹어요. 요즘 은하계 연방 부동산도 거품이 사라지는 통에 영 불황인데 말이야.
-온난화 현상 말이군요. 침통합니다. 여하튼 여기서 살 것도 아니고, 팔아먹을 것도 아니라면 지구 따위는 왜 침공한 거죠?
=치킨 사러 왔어요. 사실 이 닭이라는 존재가 지구에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요즘 은하계 치킨 값이 너무 올라서 골치 아파요. 지구에는 치킨 한 바구니 5천원밖에 안 하는 동네가 있다기에 그거 깡그리 쓸어가려고….
-그 치킨 며칠 전에 판매중지됐어요. 쯔쯔. 그니까 제대로 연구조사 좀 진득하게 한 뒤 침공을 하시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