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착하게 살아가는 법> Please Give (2010)
감독 니콜 홀로프세너
상영시간 91분
화면포맷 2.35:1 아나모픽 / 음성포맷 DD 5.1
영어 / 자막 한글, 영어
출시사 (주)유이케이
화질 ★★★☆ 음질 ★★★ 부록 ★★★
서점에서 뉴욕 관련 싸구려 책을 수십권쯤 찾는 건 일도 아니다. 책의 저자는 대부분 한국인이다. 뉴욕에서 몇달 동안 뒹굴다 사진 좀 찍고 와선 책이랍시고 내놓는데, 우습게도 그런 쓰레기가 잘 팔린다 한다. 이건 뉴욕 사랑이라기보다 헛소동이나 집착에 가깝다. 이왕 볼 거면 진짜 뉴요커의 작품을 주목해야 마땅하나, 안타깝게도 사이비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들이 널렸다. 뉴욕 감독 하면 우디 앨런만 떠올릴(앨런은 이제 유럽을 사랑하는 걸 어쩌니?) 이런 애들이 니콜 홀로프세너나 노아 봄바크의 영화를 챙겨볼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건 그래서다(둘의 주요 작품은 한국에서 DVD로 기출시돼 있다). 예전 앨런처럼 뉴욕 로케이션을 고집하진 않는 홀로프세너나 봄바크는 뉴욕 토박이로서 순도 높은 뉴욕을 그리는 데 능하다. 2010년 봄, 둘은 뉴요커 주인공을 내세운 신작 <뉴욕에서 착하게 살아가는 법>(이하 <뉴욕에서>)과 <그린버그>를 나란히 발표했다. 그중 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돼 ‘궁극의 뉴욕 영화’로 평가받은 <뉴욕에서>가 DVD로 나왔다. ‘베풀도록 하세요’라는 뜻의 원제목도 어색하게 여긴다는 홀로프세너가, 한국 젊은이의 뉴욕병에서 기인한 한국어 제목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케이트와 알렉스 부부는 빈티지 가구점을 운영한다. 죽은 사람의 자손에게 가구를 사들여 비싸게 되파는 게 그들의 주 수입원이다. 불쌍한 사람을 볼 때마다 동정심을 발휘하는 케이트로선 자기 일에 만족할 리 없다. 죄책감은 자원봉사활동 등으로 그녀를 이끈다. 딸이자 사춘기 소녀인 애비는 엄마가 자신에게만 엄격한 게 불만이다. 케이트 부부는 몇년 전에 이웃 아파트를 매입했는데, 그곳엔 아흔이 넘은 노파 혼자 살고 있다. 부부는 아파트를 확장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노파가 죽기를 바랄 수는 없다. 할머니를 돌보러 아파트를 자주 방문하는 손녀 레베카는 케이트의 안부 인사가 부담스럽다. 아파트를 확장하려는 그녀의 속셈과 할머니의 죽음이 저절로 연결되는 까닭이다. 간호사로 일하는 레베카는 성품이 착한 반면 단조롭고 외로운 삶에 익숙한 여성이다. 그녀와 반대로 언니 메리는 직선적이고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인해 간혹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인물이다. <뉴욕에서>는 여섯 뉴요커가 보낸 어느 가을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당연한 말이겠으나 뉴요커라 해서 별반 다른 삶을 살진 않는다. 주변 환경에 민감하고, 여가를 고민하고, 눈앞에 없는 사람을 험담하고, 세대간에 갈등이 벌어지고, 이웃과 마주치면 불편한 건 마찬가지다. TV의 유명인은 그들에게도 역시 유명인이고, 뉴욕 소녀에게도 200달러짜리 청바지는 그림의 떡이다. <섹스 앤 시티>를 연출한 홀로프세너는 여기에서까지 파티 피플이나 낭만적인 장소 따위를 담을 생각이 없다. 그건 보통 뉴요커의 진짜 생활과 상관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큰 사건이나 클라이맥스조차 지워버렸다. <뉴욕에서>는 여섯 인물(특히 다섯 여성)이 어떻게 사는지, 어떤 욕망을 품는지, 무엇을 느끼는지 찬찬히 보여줄 따름이다. 감독도 이 영화를 짧게 표현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찾게 만들고, 90분의 영화를 마주한 뒤 몇 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영화다.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 또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혹시 <뉴욕에서>를 보고 ‘마음의 위안을 구하는 뉴요커의 알량함’을 포착한 영화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로저 에버트의 평으로 대신 답하겠다. “<뉴욕에서>는 힘든 세상에 사는 불완전한 인물들에 관한 영화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행한다. 요즘 영화에서 이보다 혁명적인 접근을 보여준 예가 있는가?” DVD는 제작 뒷이야기(12분), 아웃테이크(4분), 인터뷰(9분), 예고편을 부록으로 제공한다. 시사회의 질문과 답변을 담은 인터뷰를 보길 권한다. 깍쟁이로 알았던 홀로프세너는 참 솔직한 여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