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 장관의 12월은 상당히 바쁜 편이다. 지난 12월8일에는 2010 세계태권도한마당 개막식, 9일에는 ‘예술가의 집’ 개관식, 14일에는 홍천 육군 3기갑여단 방문, 15일에는 국립나주박물관 기공식, 같은 날 저녁에는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활동 방문이 이어졌다. 세밑을 보내는 장관의 스케줄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으로도 보이지만, 영화인과의 잦은 만남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은 특히 눈에 띈다. 유인촌 장관은 지난 12월21일, 영화인과의 간담회를 마련했다. 김태균, 양윤호, 김용화 감독, 이태헌 오퍼스픽쳐스 대표, 김수진 비단길 대표, 고윤희 작가, 박현철 촬영감독 등 15명의 영화인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유인촌 장관은 “2011년 1월 한달 동안은 영화계의 현안을 알아보는 것에 중점을 두겠다”고 공언했다. “당분간은 다른 건 안 하고 영화만 붙들고 가볼까 합니다. 현장을 찾아가 스탭들을 직접 만나서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보고 스탭 인건비, 투자환경, 부율문제, 해외수출 등 이번에 잘 짚어서 확실하게 매뉴얼을 만들어 2월에 선임될 새 영진위 위원장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정리를 해야겠어요.” 그리고 덧붙였다. “영화쪽은 영진위도 있으니까 나는 좀 빠지고 영화인끼리 잘 협의했으면 했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 왜 잘 안되는지 모르겠어요?”
이날 간담회에서 영화인들이 전한 이야기보다 눈에 들어온 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유인촌 장관의 태도였다. 대기업의 수직계열화 문제에 대해 그는 “이번에 확실히 도마에 올려서 논의를 해보겠다”고 말했고, 표준투자계약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제라도 시작해보겠다”고 답했다. 영진위가 참여한 펀드와 모태펀드가 투자를 하면서 이자를 계산하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고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불법복제 문제에 대해서는 확신에 가까운 의지를 드러냈다. “지난 3년간 내가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저작권 문제였어요. 내가 워낙 의지를 갖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시간은 걸리겠지만, 영화인들의 피부에 와닿을 수 있도록 내년에는 집중사업으로 펼쳐보겠습니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때려잡겠습니다.” 기획개발비 지원문제에 대해서도 유인촌 장관은 “그거 해결합시다. 내가 공연, 연극, 무용, 음악계쪽은 다 바꿔놓았어요. 창작자의 열정이 끊이지 않도록 관이 함께 목표와 방식을 정해서 돕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유인촌 장관의 적극적인 태도에 간담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다만, 그의 공언이 정책적 의지에서 나온 것인지, 개인적인 스타일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애매했다.
역대 ‘최장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재직 기록을 세운 만큼, 유인촌 장관의 성격은 그동안 많은 자리에서 드러났다. 영화계와 관련된 사안으로 본다면, 2009년 11월에 있었던 ‘영화진흥위원회 개혁방안 보고’ 자리가 대표적이다. 대종상영화제에 관해서 “계속 말이 많으면 지원하지 마세요”라고 했으며, 영진위가 2012년 12월에 부산으로 이전하기로 한 계획에 대해서는 “내년(2010년)에 갑시다. 꼭 집(청사)은 지어야 하나? 임대하면 되잖아요”라고 말했다. 그처럼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지만, 유인촌 장관은 조희문 전 영진위 위원장의 해임문제처럼 5월에 불거진 논란을 6개월 뒤인 11월에야 결론짓는 늑장을 부리기도 했다. 영화계로 한정하자면, 문화부 장관의 2010년 12월 선언이라 할 수 있는 이날의 발언을 얼마만큼 신뢰해야 하는지 애매한 건 그 때문이다. 장관의 공격적인 행보가 공수표가 아닌, 실질적인 지원정책으로 나타난다면 최장수 문화부 장관 기록을 넘어 이명박 대통령과 시작과 끝을 함께한 장관으로 기록된다고 해도 환영받아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지금으로서는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으로 보인다. 지난 3년간 장관님의 호언장담은 많았지만, 장관님이 영화계로부터 신뢰받은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