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연이은 장마로 LA의 스카이라인은 야자수와 잿빛 하늘, 빗방울이 어우러져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LA에서는 쉽게 예상하지 못하는 우중충한 날씨 때문인지 연중 무휴로 주말이면 곳곳에서 열리던 작은 영화제들도 일정을 취소하는 등 주춤한 모양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극장가와 비평가협회, 언론, 블로그 등이 2010년 미국영화계를 마감하는 분위기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2011년 2월27일 수상작에 건넬 오스카 트로피를 향한 경쟁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린 셈이다. 우선 박스오피스는 연말 관객몰이를 위해 준비해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1> <투어리스트> <트론: 새로운 시작> 등 블록버스터에 더불어 수상식 후보에 오를 법한 <블랙 스완> <킹스 스피치> <파이터> 등의 이른바 상업성을 갖춘 작가영화들을 대기시켰다. 각종 비평가협회와 수상식들이 2010년을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 및 수상 결과를 내놓고 있으며, 또한 최근 발표된 골든글로브 후보 리스트를 바탕으로 미디어와 블로거들은 오스카 후보 부문별 10선과 유력한 수상자들에 대한 예측을 속속 내놓고 있다.
현재 곳곳에서 호명된 후보작과 수상작을 종합하면, 유력한 선두주자는 <소셜 네트워크> <킹스 스피치> <파이터> 세편으로 좁혀진다. 지난 12월14일 할리우드외신협회에서 주관하는 골든글로브 시상식 후보 리스트가 발표되면서 <블랙 스완> <킹스 스피치> <소셜 네트워크> <파이터> 그리고 <인셉션>에 고르게 뿌려졌던 주목을 이 세편으로 집중시켰다. 올해 골든글로브 리스트를 보면 <킹스 스피치>와 <소셜 네트워크>는 감독상, 작품상, 각본상 등 주요 수상부문을 포함해 각각 7개 부문에 오르며 두드러졌다. <LA타임스>는 이를 두고 “<킹스 스피치>야말로 (도덕적으로 모호하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안전한 ) 고상한 오스카의 취향에 맞는” 후보작이라며 미리 수상작으로 점찍기도. 한편 <파이터>는 리스트 발표 전까지는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골든글로브의 선택으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모두 6개 부문에 후보로 호명되며 뒤를 이었고, <블랙 스완> <에브리바디 올라잇>이 4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
작품상과 엔트리가 100% 일치하는 감독상이야말로 별들의 전쟁이다. 아마 2011년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는 배우들보다는 감독들에 향하는 스포트라이트가 더 밝으려는 듯, 언론들은 크리스토퍼 놀란, 데이비드 핀처, 대런 애로노프스키를 두고 선뜻 한 사람을 지지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비슷한 시기에 <허트 로커>와 캐스린 비글로에 모아졌던 여론의 기대와 예측을 기억해낸다면, 2011년 오스카 레이스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백중한 시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미영화배우연합은 <킹스 스피치>와 <파이터>를 최다 부문의 후보로 호명했고, 미국 각 지역 비평가연합들은 대부분 <소셜 네트워크>를 애호하는 결과를 내놓아 골든글로브의 선택을 뒷받침했다. <소셜 네트워크>는 시카고, 휴스턴, 토론토, 인디애나 등의 지역 비평가연합 수상작으로 연이어 호명됐고,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 역시 개인적으로 뽑은 2010년 최고작으로 이 영화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편 작품상과 감독상이 우열을 가르기 힘든 데 비해 남자배우상, 여자배우상은 비교적 한곳으로 모아지고 있다. <킹스 스피치>의 콜린 퍼스와 <블랙 스완>의 내털리 포트먼이 유력한 후보들이다.
2010년은 <소셜 네트워크> <인셉션>처럼 상업적으로도 성공하고 평단의 호평을 받은 영화들이 많아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것이 총평이라, 이곳저곳에서 가장 빈번하게 호명된 <인셉션> <블랙 스완> <킹스 스피치> <파이터> <소셜 네트워크>는 기본적으로 오스카 후보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된다. 비슷한 생각에서인지 많은 영화 블로거들은 유력한 이 다섯편에 각기 다른 다섯편을 더해 자신만의 리스트들을 공개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 영화웹진 ‘무비라인’(Movieline.com)은 “오스카가 발견하지 못할 2010년의 영화 10편”을, <뉴욕매거진>도 “오스카 상을 받지 못할 최고의 연기 25”를 선정해, 오스카의 사각지대에 놓인 불운한 영화와 연기자들의 퍼포먼스를 재조명하기도 했다.
이 계절의 관심이 영화산업의 한해 결실을 마무리하는 큰 잔치에 몰리고 있음은 틀림없다. 내년 1월부터 발표될 각종 수상식의 결과와 1월25일 발표될 제83회 오스카 노미네이션 리스트를 종합하며, ‘나만의 (할리우드영화) 베스트10’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