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10대 영국 소년들의 몽정기 <내 친구의 소원>
2011-01-05
글 : 이영진

15살 동갑내기 지기(유진 번)와 로비(조시 볼트)는 형제보다 더한 친구다. 찰거머리처럼 서로에게 달라붙어다니다 보니 지기는 로비 가족의 여행에도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되고, 바에서 일하는 소피(브리오니 세스)도 만나게 된다. 로비는 앳된 용모를 앞세워 소피를 유혹하는 데 성공하지만 과음으로 일생 일대의 거사를 눈앞에서 놓친다. 지기는 몸져누운 친구 대신 소피의 침대차로 향하지만 ‘볼일없다’는 수모만 당하고 돌아온다. 성욕은 왕성하나 딱히 해결할 방도가 없는 동병상련의 두 친구. 허탕 치고 돌아오는 여행길에 지기와 로비는 “16살이 되면 물 좋은 클럽에 가서 총각딱지를 어서 떼버리자”고 의기투합한다. 그들의 바람대로, 조금만 참아내면 판타스틱한 하룻밤이 생일선물로 주어질까. 여행을 끝내고 리버풀로 돌아오는 날, 로비는 갑자기 쓰러지고 곧바로 중환자실로 실려간다. 그리고 며칠 뒤 지기는 로비가 시한부 인생이며 열여섯 생일을 맞기 전에 숨을 거둘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내 친구의 소원>은 10대 영국 소년들을 주인공 삼은 <아메리칸 파이> 혹은 <몽정기>다. “16살이 되지 않아” 소아병동에 입원한 로비는 “섹시한 간호사가 와서 목욕시켜주면 좋겠다”고, 내년엔 꼭 “죽이는 여자들이” 득시글거리는 휴양지에 놀러가자고 시시덕거린다. 심장마비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충격적 사실 앞에서 로비는 말을 잃지만 그것도 잠깐뿐이다. 도리어 “섹스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숫총각으로 죽을 순 없다”며 로비는 악악대고, 지기는 불철주야 로비의 섹스 파트너를 구하러 다닌다.

“친구가 죽어가요. 딱 하룻밤만!” 죽을 병에 걸린 친구의 ‘동정’을 떼주기 위해 안면몰수하고 백방으로 ‘동정’을 구하는 지기의 모습은 과장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소년들의 절실한 사정을 그 누가 알 것인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난 섹스를 하고야 말겠다’는 로비의 시종일관의 결심은 급기야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전염되고, 두 친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덩치 좋은 간호사까지 나서 로비의 섹스를 돕는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재치 넘치는 대사들, 이를테면 로비는 환자복을 입고 병원 앞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다 간호사에게 걸리자 “코카인 안 하는 것만 해도 다행으로 알라”고 말한다, 혹은 지기는 도덕과 윤리가 중요하다는 간호사에게 환자의 행복은 안중에도 없느냐고 따진다, 만으로 지기와 로비의 유치찬란 대작전이 수긍되는 건 아니다. 실은 로비의 성욕은 주체 못할 사춘기 소년의 욕정이라기보다 “어른이 되고픈” 마음이며, 이는 후반부로 갈수록 겉으로 내보이지 않지만 하루라도 좀더 살고 싶은 마음처럼 받아들여진다. 로비의 ‘그녀’를 알아보기 위해 매음굴까지 샅샅이 뒤지는 지기의 이해 못할 안간힘도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떠난,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야 만날 수 있다는 아버지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니까 지기와 로비의 소동은 더이상 아이 취급 말라는 세상을 향한 필사적인 외침인 셈이다.

한편 <내 친구의 소원>은 숨길 것 없는 아이들의 세계를 응원하는 것과 달리 비밀과 거짓말로만 세상을 대하고 자신을 숨기는 어른들의 삶을 우회적으로 비꼬기도 한다. 로비의 아버지는 아들을 핑계로 매춘굴을 찾고, 지기의 엄마는 아들을 핑계로 남편의 그림자를 지운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행복한 삶’을 훈계할 수 있는가.

배우로서의 경력은 이제 막 걸음마 수준이지만 관객을 상대로 고민 상담을 청하는 것 같은 유진 번과 조시 볼트의 연기는 눈여겨볼 만하다. <MR. 후아유> <카핑 베토벤> 등의 제작자였다 감독으로 변신한 브루스 웹 또한 우스꽝스러운 사건들을 연속으로 펼치면서도 진지한 문제의식을 잃지 않는 균형있는 연출력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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