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김민종] 로맨스 가이에서 현실의 사나이로
2011-01-13
글 : 강병진
사진 : 백종헌
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으로 돌아온 김민종

당신의 이상형은 둘 중 누구인가. 극중에서 삼각관계에 놓인 한국의 여배우라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질문이다. 묻는 이들은 ‘괜한’ 경쟁을 붙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배우들은 아예 다른 이름을 내놓는다. 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이하 <아테나>)의 수애 또한 “정우성, 차승원보다 김민종이 이상형”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은 본심과 별개로 <아테나>에서 김민종이 차지한 자리에 대한 적확한 설명이다. 김민종은 핵심적인 주인공이 아니다. 주연 여배우와의 로맨스도 없다. 그래서 다른 남자배우보다 ‘편안하고 부담없다’. 그리고 동시에 배우 김민종의 입지적 변화를 뜻한다. 하지만 단순히 주연에서 조연의 자리로 내려온 변화가 아니다. 핵에너지를 둘러싼 첩보전쟁을 그리는 <아테나>에서 김민종이 맡은 김기수는 가장 넓은 활동 반경을 가진 캐릭터다. 언뜻 보면 마작방을 운영하는 다소 망가진 건달이지만 사실은 외국어에 능통하고 사격 실력도 뛰어난 전직 북한특수요원. 이정우(정우성)는 NTS의 지령을 따르고, 손혁(차승원)은 아테나의 이익을 위하지만, 김기수는 누구의 편도, 누구의 적도 될 수 있다. 총격과 액션이 쉴새없이 몰아치는 <아테나>의 무게를 누그러뜨리는 빈틈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동선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드는 조커인 만큼, 가장 궁금한 인물이다. 무엇보다 그를 연기하는 배우가 김민종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

데뷔 23년, 멜로의 초상을 지우고

물론 그리 머지않은 과거였다면, 김민종은 이정우와 손혁, 그중에서도 이정우를 연기했을 것이다. 액션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이 가질 법한 뛰어난 능력과 유쾌함은 그가 지금까지 자신의 대표작에서 꾸준히 연기해온 캐릭터였다. “나는 모르겠는데, 팬들은 불만이 있는 것 같더라. (웃음) 그래서 끝까지 봐달라고 했다. 김기수를 매력적인 인물로 찾아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연기한 남자들과 김기수가 아예 다른 방향에 놓여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영화에서는 <삼인조>와 <나비> <패밀리> <토요일 오후 2시> 같은 작품에서, 드라마로는 <웨딩드레스> <수호천사> <섬마을 선생님> <머나먼 나라> 등에서 김기수의 결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모두 건달이거나 건달에 가까운 남자였고 김민종은 그들을 통해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드러내곤 했다. 그가 김기수를 제의받았을 때도 큰 거부감이 없었던 이유다. “약간 삼류 건달로 가자고 하는데, 처음에는 ‘에이, 뭐야’ 그랬다. (웃음) 그런데 나도 코미디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연기를 하면서 뭔가 다른 점을 만들어가면 될 것 같더라.” 다만 김기수가 그들과 다른 건, 여주인공은 물론이고 누구와도 로맨스를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1월5일 현재 8부까지 진행된 <아테나>에서 김기수의 로맨스는 이탈리아에서 만난 대통령의 딸에게 가진 가벼운 관심 정도뿐이었다. 현재로서는 이후에도 그의 로맨스가 등장할 여지가 없는 듯 보인다.

그런데 멜로연기를 하지 않는 김민종이라니, 상당히 낯설다. 멜로드라마가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김기수는 다소 정적인 남성을 연기했던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의 이서준이나 <천하일색 박정금>의 한경수보다도 더 이질적인 김민종이다. 그는 지금까지 주로 “아픔도 있고, 감수성도 있고, 코믹한 면도 있고, 남자다운 면도 있는 인물을 연기할 때 가장 즐거웠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고전적인 호남형이랄까. 실생활에서도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즐기고, ‘의리’를 중요시하는 김민종은 작품에서도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남성상을 연기했다. 그리고 그의 남성상은 언제나 여성에 대한 순애보로 완성됐다. 김민종의 남자들은 싸움도 잘하고, ‘가오’도 잡지만 자신이 첫눈에 반한 여성에게만큼은 어수룩하거나(<수호천사> <미스터 Q>), 맹목적이다(<머나먼 나라>). 물론 그들은 한국의 남자배우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캐릭터이지만, 가수 활동을 겸업한 김민종은 연기를 통해 추구하는 캐릭터와 자신의 음악적 정서를 일치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독보적인 스타였다. <바보처럼>은 “그대는 이미 다른 사람과 행복하게 지내는데, 바보처럼 또 그대를 찾는다”는 절규고, <Endless Love>는 “우리 헤어짐은 이대로 간직하겠다”는 다짐이며, <착한 사랑>은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아픔에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그대를 사랑한다”는 고백이었다. 김민종은 “대사를 쓰듯 가사를 썼고, 연기하듯 노래했다”고 말했다. 그러니 1990년대에 10대와 20대를 보낸 한국 남자들이 노래방에서 그의 노래를 부르는 건, 단지 음악적 정서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사실상 김민종이 구현했던 남성 캐릭터와의 접신을 시도하는 거나 다름없다. 당연히 어떤 남자는 박수를 받지만, 또 어떤 남자는 비난을 얻는다.

원년의 청춘스타는 성장 중

언제나 사랑이란 대의를 따랐던 김민종의 남자들과 달리 <아테나>의 김기수는 오로지 생존본능을 쫓는다. 위험은 멀리하고, 그런데도 위험해지면 도망치고, 돈이 없는 곳에는 가지 않는다. 그가 이제 드라마 속의 첩보전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되는 이유 또한 북에 두고 온 가족이다. 김민종은 김기수를 통해 멜로를 지우면서, 완성된 남성상이 아닌 30대 후반의 현실적인 남성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상대 여배우가 없는 건 처음이다. (웃음) 사실 나름 기수의 러브스토리가 있었고 촬영까지 했는데, 드라마가 산만해질 것 같아서 뺐다. 개인적으로도 기수에게 뚜렷한 러브라인은 없었으면 한다. 뒤에 나온다고 해도 가볍게 묘사하는 정도였으면 좋겠다. 극적인 사랑이 어울리지 않는 남자인 것 같다.” 또한 그의 나이가 드러난다는 점도 중요하다. “김기수를 연기하면서 콧수염을 6개월째 기르고 있다. 처음에는 되게 어색하더라. 그런데 지금은 계속 길러볼까 생각 중이다. 내 얼굴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정작 나는 잘 모르지만, 분명한 건 외모나 성격이나 생각도 달라지고 있다. 50살을 바라보고 생각하면, 이제 사람들에게 조금 더 친근감있는 외모로 나이들어가야 할 것 같다. (웃음)”

<아테나>가 그에게 어떤 성과를 안겨줄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이제 김민종에게 기대할 수 있는 모습이 더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그 또한 남성성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이다. “<아테나>를 본 분 가운데 그런 기대를 하는 분들이 많다. 아무 생각 없다가 좀 불안해졌다. (웃음) 그런 기대가 잘 맞으면 좋겠는데 과연 그렇게 될까? 영화든 드라마든 서두른다고 될 것 같지는 않다. 언제나 그랬듯이 차분히 기다릴 거다. 데뷔한 지 이제 23년 정도 됐는데, 앞으로도 23년은 더 연기를 해야 하니까. (웃음)” 아이돌이 장악한 TV 속에서, 원년의 청춘스타는 그처럼 또 다른 성장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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