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세스 로건, 주걸륜]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은 남자 vs 남자
2011-01-17
글 : 김용언
<그린 호넷>의 세스 로건, 주걸륜

대개 슈퍼히어로들은 홀로 움직인다. 슈퍼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배트맨(팀으로 움직이는 엑스맨‘들’은 논외로 치자). 물론 아이언맨에게는 ‘워 머신’ 로니가 있고 배트맨에게는 로빈이 있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조연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린 호넷>에 이르러선 그 공식이 깨진다. 표면적으로는 부잣집 망나니 브릿(세스 로건)이 주인공이지만 실상 메커닉적인 측면을 장악하고 날렵한 액션으로 악당들을 일망타진하는 건 그의 조력자 가토(주걸륜)다. 톰과 제리, 미키 마우스와 도널드 덕처럼 대등한 존재로서의 짝패, 브릿과 가토 중 한명이라도 없다면 ‘그린 호넷’이라는 자경단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라디오 드라마에서 TV 드라마까지 인기

<그린 호넷>은 1936년 미국의 한 라디오 방송국 드라마로 처음 선보였다. <데일리 센티널> 신문 발행자이자 존경받는 언론인 제임스 레이드가 숨을 거둔 다음, 그의 아들 브릿은 그때까지의 한량 같은 삶에서 벗어나 아버지처럼 뭔가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와 특별한 인연이 있던 가토가 불쑥 브릿의 삶에 끼어든다. 뛰어난 엔지니어인 가토는 ‘크라이슬러 임페리얼 크라운’을 일명 ‘블랙 뷰티’라 불리는 슈퍼히어로급 자동차로 개조한다. 이에 흥분한 브릿은 블랙 뷰티를 이용해 LA를 주름잡는 범죄자들을 소탕할 계획을 세운다. 대신 공적인 법보다 더 빠르고 강력한 제재를 가하려면 정체를 감춰야 한다. 브릿은 낮에는 신문 발행인으로 멀쩡하게 지내지만 밤에는 가토와 함께 검은색 복면을 쓴 ‘그린 호넷’으로 거리를 누비며 악당에 맞서 싸운다. 심지어 슈퍼맨이 코믹스에 처음 등장한 게 1938년, 배트맨은 1939년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이중 정체성을 오가며 활약하는 그린 호넷 자경단은 슈퍼히어로들의 진짜 조상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1952년까지 인기리에 방송됐던 라디오 드라마 시리즈 <그린 호넷>은 1966년 코믹스쪽에도 진출했지만, 본격적으로 전세계에 그 이름을 떨친 건 1966년부터 67년까지 <ABC>에서 방영된 드라마 시리즈를 통해서였다. 브릿 역의 밴 윌리엄스는 말할 것도 없고, 가토 역의 이소룡은 <그린 호넷>을 통해 단순한 스타를 넘어선 하나의 액션 아이콘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세스 로건 + 주걸륜

미국 코미디의 새로운 ‘중력의 중심’으로 불리는 세스 로건이 <그린 호넷>에 열정을 바치게 된 것도 <ABC> 드라마 덕분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의 죽마고우이자 절친한 동료인 에반 골드버그와 함께 몇년 동안 <그린 호넷>을 영화화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심지어 첫 번째 블록버스터영화에서 작가, 프로듀서, 배우로서의 1인다역이라는 막중한 짐을 떠맡을 정도였다.

하지만 잠깐, 세스 로건의 지금까지 필모그래피를 들춰본다면 <그린 호넷>과의 연관성이 다소 의아해진다. 캐나다에서 태어났으며 사회주의자 부모 밑에서 성장한 이 뚱뚱한 유대인은, 13살 때부터 클럽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진행할 만큼 뛰어난 희극 재능을 인정받았다. 16살이 되었을 때 주드 애파토우(<40살까지 못해본 남자> 연출)의 눈에 띄어 LA로 진출한 다음, 그가 배우 혹은 작가 혹은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들의 이름을 보자. <40살까지 못해본 남자> <유, 미 앤 듀프리> <슈퍼배드> <사고친 후에>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퍼니 피플> <잭과 미리, 포르노를 만들다> <몬스터 VS 에이리언>… 그리고 사샤 바론 코언의 TV쇼 <다 알리 G 쇼>까지. SF 액션코미디 블록버스터인 <그린 호넷>은 이중 어디쯤에 위치하는 작품인 걸까.

세스 로건에게 <그린 호넷>의 핵심은 무엇보다 두 남자 사이의 우정이다.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은 두 남자가 있다. 그런데 그들 사이의 관계야말로 그들이 앞으로 극복해야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악당들은 기를 쓰고 그들을 죽이려 하는데, 두 남자가 어떻게 서로 힘을 합치고 함께 일할 수 있는지를 깨닫기만 한다면 모든 게 잘 풀릴 것이다.” 지금까지 몸만 어른이고 정신상태는 고등학생쯤에 머물러 있는 남자친구들의 방종하고 지저분한 우정을 그리는 데 일가견이 있던 세스 로건으로선, 조금 더 점잖게 다운그레이드된 버디 무비를 그려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프로듀서 닐 모리츠는 단언했다. “<그린 호넷> 프로젝트를 발전시키기 시작했을 때, 세스 이외의 더 나은 배우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브릿이 그린 호넷으로 바뀌어가는 극적인 과정이 믿음직하려면, 영화 초반 브릿의 망나니 같은 캐릭터가 관객에게 진짜처럼 보여야 하는데 세스만큼 그런 연기를 잘할 수 있는 배우는 없다.” 세스 로건 역시 진지하게 동의했다. “<그린 호넷>은 삶 속에서 뭔가 가치있는 목표를 구현해보려 애쓰는 무책임한 멍청이 브릿의 이야기다. 무책임한 멍청이라면, 내가 일가견이 있다.”

주걸륜은 물론 중화권을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슈퍼스타 뮤지션이다. 하지만 그가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시도했던 <이니셜 D>와 <황후花>는 물음표로 남아 있다. 실생활에서도 ‘음악밖에 모르는 완벽주의자’라 불리는 주걸륜은 대중 앞에서 화려한 엔터테인먼트의 일부로 작동하기보다,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몽상에 잠기는 쪽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위의 영화 두편에서 주걸륜은 딱딱하고 불편해 보인다. 본인이 출연과 각본, 연출, 음악까지 도맡았던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 그나마 조금 자연스럽게 이완되어 보이는 건, 그 영화 자체가 주걸륜 자신의 학창 시절에 기반한 반자전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주걸륜의 첫 번째 영어권 영화 <그린 호넷>에선 어떨까? 감독 미셸 공드리와 세스 로건, 브릿의 비서 르노어로 등장하는 조연 카메론 디아즈 등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빅 네임들이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그는 이전처럼 부담감에 짓눌린 모습을 없앨 수 있을까? 지금까지 공개된 <그린 호넷> 예고편을 보았을 땐 호들갑스러운 브릿에게 ‘썩소’를 픽픽 날리면서 날렵하고 냉철한 표정을 또렷하게 유지하는 주걸륜은 꽤 괜찮게 어울린다. 단점으로 지적받았던 그의 딱딱한 표정은 이소룡의 그것과 또 다른 카리스마가 가능한 영역을 넘보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아시아의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가토 역의 오디션에 참가했고 마침내 주걸륜이 선택되었을 때, 제작진은 그에게서 ‘브릿의 그 어떤 시끄러운 명령도 받아들일 것 같지 않은’ 카리스마와 쿨한 애티튜드를 발견했다. 감독 미셸 공드리 역시 “물론 이소룡의 유산과 아우라는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주걸륜은 이소룡을 흉내내는 게 아니라 그 자신만의 다른 쿨한 애티튜드로 접근했다. 그는 걸음걸이에서부터 가토의 자신감을 보여주었다”고 칭찬했다. 미셸 공드리가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야심적인 액션신 ‘가토-비전’을 소화해낸 주걸륜이 그 어떤 걸출한 슈퍼히어로로 재탄생하게 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블록버스터영화의 공식을 비틀다

<그린 호넷>은 기본적으로 익숙한 블록버스터영화의 공식을 비트는 영화다. 내용적으로도 그렇지만 외적인 이유로도 그러하다. 미셸 공드리는 수공업적인 레트로 스타일에 치중한 어여쁜 영화들을 만들어왔고 세스 로건은 ‘신선한 화장실 유머’의 대가이자 우디 앨런의 또 다른 적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주걸륜은 아시아 팝스타로서의 명성을 쌓아왔다. 프로듀서 닐 모리츠는 바로 “매우 다른 세계로부터 온 사람들의 조합”이라는 점이야말로 <그린 호넷>의 매력을 상승시킨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 시점에서 카메론 디아즈의 여섯줄 요약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정말 멋진 파트너십이었다. 세트장에 도착하면 미셸이 와서 디렉션을 준다. 그러면 세스와 에반이 다가와 새로 고친 대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갑자기 어떤 시너지가 폭발한다. 세트장은 믹서와도 같다. 각종 요소들이 쏟아져 들어가고, 이제 버튼을 누르면 전혀 새로운 종류의 피냐 콜라다가 튀어나온다.” 1월27일 개봉일까지 충분히 기다릴 가치가 있는 유혹이다.

사진제공 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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