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톡]
[김병춘] 첫 주연작… 너무 이른 것 아닐까?
2011-01-25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죽이러 갑니다>의 배우 김병춘

“요즘 애들은 낭만을 몰라.” <죽이러 갑니다>의 주인공 엄 사장(김병춘)은 극중 딸(김꽃비)에게 교외에 놀러왔으면 차 안에만 있지 말고 “하늘도 좀 보라”고 다그친다. 자신이 해고한 노동자(이경영)의 위협에 혼자만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이기적인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치곤 제법 ‘낭만적’(?)이긴 하다. 꼰대 같은, 그래서 더 얄미운 극중 역할과 달리 인터뷰에서 만난 배우 김병춘은 낭만적이었다. 그의 대답은 외모만큼이나 담백한 감성이 실려 있었다. 김병춘은 “같은 의미라도 시적으로 말하는 게 좋더라”면서 “언어를 활용한다는 건 가식이 아니라 자신을 고양시키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극락도 살인사건>(2007), <어깨너머의 연인>(2007) 등 수십편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활동했고, 최근 MBC 주말드라마 <글로리아>에서 클럽 ‘추억 속으로’의 기타리스트 ‘이윤배’로 활약한 배우 김병춘에게 <죽이러 갑니다>는 첫 주연작이다.

-데뷔 31년 만에 첫 주연을 맡았다.
=아직 31년밖에 안됐는데 주연 맡아서 교만해질까봐 걱정이고. (웃음) 올해로 44살이다. 마흔살 때 꿈을 하나 꿨다. 55살, 70살, 85살, 15년을 주기로 3단계에 걸쳐 연기를 하는 꿈이었다. 1단계 지점이 아직 12년이나 남았는데, 예상보다 주연을 일찍 맡은 셈이다. (웃음) 예술가라면 꾸준히 진화하기 위해 가시적인 목표를 세워야 한다. 이루어질 수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목표를 설정하는 순간부터 행복이라는 것이다. 나는 꿈을 설정하는 기쁨을 안다. 얼마 전 아침프로그램 <여유만만>에 출연해 10년 뒤인 2021년 칸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타는 게 꿈이라고 말한 것도 그래서다. 혹여나 게을러졌을 때 남들이 ‘저 사람, 칸에서 상 받는 게 꿈이라고 해놓고’라고 말할 수 있잖나. 스스로 채찍질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다.

-엄 사장 역은 어떻게 제의받았나.
=이 영화에서 캐스팅과 관련한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다. ‘극중 소품으로 등장하는 엄 사장 가족사진을 3번 찍었다.’ 내가 세 번째 캐스팅이었다. 먼저 캐스팅된 두 배우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촬영 전에 하차했다. <극락도 살인사건> 때 인연을 맺은 조감독이 나를 박수영 감독에게 천거하면서 캐스팅됐다. 세상을 살다보면 덥지 않나. 그러나 바람은 내가 원한다고 불어오지 않는다. 주인공이라 얼마나 좋았겠나. 그 바람이 나도 모르게 내게 와서 내 피부에 닿은 것이다. 바람이라는 인연을 만들어준 박수영 감독에게 고마운 것도 그래서다.

-엄 사장은 어떤 인물이었나.
=극중 모든 갈등은 욕심에서 비롯됐다. 물론 욕심은 부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욕심을 안 부리면 무슨 맛으로 세상을 살겠나. 문제는 욕심이 지혜롭지 않을 때다. 지혜로운 사람의 욕심은 본인도, 세상도 이롭게 한다. 그러나 엄 사장은 지혜롭지 못했다. 부의 분배를 안 했고, 노동자와의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매번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빠져나가려고 하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게 잘못된 행동인지 깨닫지 못하는 인간이다. 그런 인물을 맞이해보자고 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밉상이더라. 원래 부자는 아닌 듯하다.
=맞다. 자수성가형이라 그런 행동을 하는 거다. 누가 막대기를 들고 있기만 해도 오버해서 방어하는 사람이다.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부를 구축했다. ‘최선’에 대한 강박관념도 있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신을 해치려는 해고노동자에게 ‘최선’을 운운하는 건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살아온 까닭이다. 그래서 불쌍하다.

-극단 목화 출신이다.
=1991년 4월10일에 제대했다. 그날 군복을 입은 채 대학로에서 800~1천장의 포스터를 붙이고 다녔다. 서울예대 후배 중 성지루, 박희순이 극단 선배였다. 극단에 먼저 들어가는 바람에 그렇게 서열이 정해졌는데, 입단하자마자 셋이서 삼총사가 됐다. 이른바 ‘목화의 뉴웨이브’였다. (웃음) 그 다음이 유해진, 임원희가 있고 김수로는 잠깐 있었고. 목화 출신들의 장점이랄까, 보다시피 완벽한 인격체잖아. 생긴 것도 그렇고 다른 배우와 절대로 섞이지가 않는다. 그만큼 개성이 뚜렷하다는 말이다.

-오태석이라는 당대 최고의 연출가 덕분일 것이다.
=선생님은 매 작품 배우들에게 가장 어려운 걸 시킨다. 그 다음 작품 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역할을 맡긴다. 매번 다른 방향으로 튀니까 배우들의 역량이 얼마나 쌓이겠는가. 상황을 던져줄 때도 그런 식이다. ‘여기는 이렇게 해라’가 아니라 ‘이건 뭐 이런 거 아니겠냐’라고 한다. 그 답을 배우가 찾아오게 한다. 그러면 배우들은 사나흘 있다가 자기 나름의 ‘답’을 가져온다. 배우들에게 그게 연기의 맛이다. 그게 목화다.

-청춘을 무대 위에서 보낸 셈이다.
=25살부터 35살까지, 젊음을 목화에 모두 던졌다. 추워도 연기적인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도 그래서인 것 같다. 오태석이라는 연출가가 준 강력한 항체 덕분이다.

-다음 선택이 궁금하다.
=현재 드라마와 영화를 조율 중이다. 아직 밝힐 수는 없지만 조만간 결정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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