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행복합니다, 살아 있어서
2011-02-10
글 : 이동진 (영화평론가)
감각을 스크린에 육화하는 <아이 엠 러브>의 생기

* 글에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묘사가 담겨 있습니다.

“그게 빛이든 안개든, 필름에 담긴 이미지는 우리가 죽음에 대해 거둔 유일한 승리다. 영화는 삶의 연장이다. 영화에서 삶은 죽음보다 훨씬 더 지배적이다. 우리는 우리의 유령들과 함께 영원히 살아간다.”(장 클로드 카리에르)

수많은 영화들이 마음의 궤적과 파장을 스크린에 담아내기 위해 애쓴다. 새로 찾아온 감정이 삶의 행로 자체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전까지 누적된 기나긴 시간 전체와 겨뤄서 이겨야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영화들은 순간이 세월을 삼키는 모습을 너무나 쉽게 가정하고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루카 구아다니노의 <아이 엠 러브>는 그 순간의 에너지와 방향성을 창의적이고도 폭발적인 방식으로 제시하고 묘사함으로써 관객을 납득시킨다. 이 영화의 숏과 신은 종종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고전적이고 우아하면서 야단스러울 정도로 감각적인 영화를 보면서 무시로 일렁거렸던 내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1. 軌

<아이 엠 러브>의 내용은 익숙하다. 우선 이것은 21세기에 다시 만들어진 <인형의 집> 같다. 입센의 희곡과 루카 구아다니노의 영화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두 여주인공은 세 아이의 어머니이고 (적어도 겉으로는) 자상한 남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남편 몰래 어떤 일을 하든 그들은 그 과정에서 자신이 그저 남편의 인형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이건 이탈리아를 무대로 재창조된 <채털리 부인의 연인> 같기도 하다. 헌신적인 결혼생활을 했지만 어느 순간 공허와 권태를 깨달은 여자는 산에 사는 남자와의 몸과 마음이 모두 충만해지는 관계를 경험한 뒤 이전처럼 살 순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남편을 떠나간다.

<아이 엠 러브>의 내러티브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남편이라는 구심력과 애인이라는 원심력 사이에서 갈등하던 여성이 뜻하지 않은 사건을 경험한 뒤 용기를 내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이야기다. 여기에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다. 하지만 반대로 작용하는 그 두 가지 힘이 엠마라는 한 인간의 마음에서 빚어내는 궤적을 그려내는 양상은 실로 탁월하다.

2. 昇

그 여자의 남편 탄크레디는 사위가 평탄한 지역의 대저택에 살고, 그 여자의 애인 안토니오는 좁고 굽은 길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산 위 오두막에 산다. 딸 베타가 남자친구 그레고리오 대신 여선생 앙가라드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밝히는 편지를 우연히 읽고 난 엠마는 밀라노 두오모의 계단을 올라간다. 두오모 옥상 끝까지 오른 그녀가 편지를 손에 쥔 채 더 높은 첨탑을 올려다보는 그 신의 마지막 숏에 이어지는 다음 신 첫 숏은 하늘에서 서서히 하강해 산레모의 산속 안토니오의 집을 담는다. 그 두개의 신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연결될 때 두 사람의 감정이 지닌 상승 욕구는 하늘을 가로질러 이어진다.

그 집에 찾아온 (엠마의 아들인) 친구 에도아르도에게 안토니오는 이곳에 레스토랑을 열고 싶지만 여기까지 누가 올라오겠냐면서 반대하는 아버지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얼마 뒤 그곳까지 기꺼이 올라오는 여자를 만난다.

엠마의 마음속 격랑을 눈치챌 때 이 영화의 카메라는 높이에 대한 감각을 강조한다. 저택에 케이크를 들고 찾아온 안토니오를 처음으로 만나기 바로 직전 숏에서, 엠마는 이 영화에 단 한번 등장하는 직부감 고정 앵글을 통해 가장 낮은 위치에 서 있는 것으로 스케치된다. 그리고 짧은 인사 뒤 안토니오가 정원을 가로질러 돌아갈 때, 엠마는 2층으로 올라가 그의 퇴장을 창밖으로 내려다본다. 안토니오와의 관계가 급진전될 때 변화 직전의 엠마를 낮은 위치로 설명하는 앵글은 둘이 처음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서점 앞 부감 크레인숏으로 변주된다.

밀라노 두오모의 옥상이든 산레모의 산이든, 마음이 흔들리면 엠마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이 영화의 연인들은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밀회를 한다. 그리고 엠마와 탄크레디가 서로의 가슴에 못을 박으며 헤어지게 되는 곳은 세상의 밑바닥, 성당의 어두컴컴한 1층 홀이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상승하기 위해 하강한다. 그런 카메라가 끊임없이 들어올리는 것은 바로 엠마의 마음이다. 산 위에 있는 안토니오의 집을 엠마가 처음 방문할 때, 구불구불 오르막길을 오래오래 보여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게중심을 높이면 에너지는 많아지는 대신 불안정해진다. 이 영화 초반부에서 안정적이지만 활력이 없었던 엠마는 후반부에 이르러 극도로 불안정해지는 대신 삶 전체를 바꿀 만한 에너지를 얻는다.

3. 門

<아이 엠 러브>는 닫힌 창문으로 시작해서 열어젖혀진 현관문으로 끝나는 영화다. 폭설에 인적이 끊긴 밀라노 시내 곳곳을 보여주는 오프닝 크레딧 시퀀스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이 영화가 시작할 때의 첫 숏은 대저택의 굳게 닫힌 창문을 비춘다. 이어 영화는 엠마가 마음의 움직임을 느낄 때마다 수시로 문을 닫는 모습을 넣는다. 1층 야외의 수영장 옆 정원에서 열리고 있는 파티 소식이 궁금하면서도 애써 방 안에서 수를 놓고 있는 엠마를 위해 늙은 하녀는 창문을 닫고 커튼까지 쳐준다. 안토니오와의 키스 뒤 집으로 돌아온 엠마가 거실 이곳저곳을 불안하게 거닐 때 젊은 하녀는 육중한 철문을 닫아준다. 하녀들은 곧 그 저택에서 오래도록 식물처럼 살아온 엠마의 습관과도 같은 인물들이다. 그들이 문을 닫을 때 수십년간 대저택에 뿌리를 뻗으며 길들여졌던 엠마의 삶이 의존해온 질긴 관성은 이제 막 운행을 시작하는 감정에 브레이크를 건다.

하지만 엠마의 마음속 진동은 계속 문을 열어젖히려 한다. 그녀가 안토니오와 처음으로 잠자리를 할 때와 그 직후 달콤한 오수를 즐길 때, 안토니오 오두막의 모든 창문은 바깥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그리고 섹스는 그녀의 문이 열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게 된 상황에서, 어렵사리 열었던 엠마의 문은 이제 예전처럼 닫혀야 할 것만 같다. 아들의 죽음을 확인한 뒤 병원에서 돌아와 엠마가 작은 침대 위로 쓰러져 잠에 빠질 때 뒤따라 들어온 하녀는 창문을 꼭 닫아 그녀의 지나온 삶이 익숙하게 받아들여온 어둠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죽음과도 같은 잠에서 엠마가 깨어난 뒤 그 창문은 기어이 열어젖혀진다.

이 영화 본편의 마지막 숏이 보여주는 것은 세상 밖으로 활짝 열린 현관 문이다. 딸 베타의 시점으로 묘사되는 이 숏에서는 열린 문만 보일 뿐 집을 박차고 나가는 엠마는 보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엠마는 부재를 통해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웅변한다. 닫힌 문 안쪽의 저택으로 구획지어진 그녀의 이전 삶은 이제 그 장면에서 구두점을 찍으며 완료되었다. 그녀는 거기 없었다.

이어지는 엔딩 크레딧 때 덧붙여진 에필로그는 빛이 새어들어오는 동굴 안에 누워 있던 엠마와 안토니오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오래도록 보여준다. 그녀가 새로 존재하는 그 자리는 영원히 열려 있는 동굴. 이제 또 다른 삶의 자궁 안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는 새롭게 탄생할 것이다.

4. 光

이 영화는 엠마의 새로운 사랑을 빛으로 추인해 찬란한 성애로 그린다. 그녀가 안토니오와 키스를 하거나 섹스를 할 때, 두 연인이 함께 있는 공간은 넘치는 광량으로 눈부시게 빛난다. 햇살 가득한 야외에서의 키스와 섹스는 물론, 안토니오의 오두막 안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첫 섹스 역시 열린 창문들에서 쏟아지는 빛으로 온통 환하다. 베타가 거리에서 앙가라드와 키스를 나누는 장면 역시 무척이나 밝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그게 혼외정사든 동성애든, 솟아오르는 순수한 욕망을 넘치는 빛으로 추인한다. 성애의 의미를 지닌 식사장면 역시 빛으로 축복받는다. 엠마가 다른 두 여자와 함께 안토니오가 만들어준 새우 요리를 입에 넣을 때, 셋 중 어둠 속에서 조명을 받는 것은 오로지 엠마뿐이다.

반면 의무로 남은 남녀관계는 ‘정상적’으로 여겨지는 사이라고 할지라도 어둠의 공간에 남겨둔다. 베타가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남자친구인 그레고리오와 키스를 나누다 몸을 사리는 곳은 대저택의 음침한 골방이다. 팬티만 입은 남편 탄크레디를 엠마가 요령껏 거절할 때의 침실은 적이 어둡다(탄크레디는 결혼 전 엠마와 연애할 때도 주로 자동차 안을 이용했다).

성애의 순간만이 아니다. <아이 엠 러브>의 세계는 야산이나 오두막처럼 안토니오가 활동하는 빛의 공간과, 대저택처럼 탄크레디가 점유하는 어둠의 공간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 영화에서 탄크레디는 단 한번의 예외를 제외하면 언제나 실내에만 머무르는데 그 실내는 대부분 빛이 부족하다. 그리고 단 한번의 예외는 아들의 장례식 장면이다.

장례식을 마친 뒤 한쪽에 구두를 벗어둔 채 홀의 다른 쪽에 맨발로 넋이 빠져 서 있는 엠마를 위로하러 탄크레디가 다가간다. 그리곤 구두가 놓여 있는 곳으로 엠마를 데리고 간다(탄크레디는 그런 남자다. 벗겨진 구두를 들고 아내에게 다가가는 대신, 아내를 데리고 구두쪽으로 간다). 엠마의 몸에는 탄크레디의 윗옷이 걸쳐져 있고, 그런 그녀에게 그는 자신이 붙여준 이름인 ‘엠마!’를 두번 불러 위무하려 한다. 그 순간 홀의 높은 천장 위로 푸드덕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를 본 21세기의 노라는 “당신은 내가 누군지 이젠 알지 못해요”라고 내뱉고서 새로운 사랑을, 오래도록 잊었던 정체성을 공표한다.

탄크레디와 엠마가 이렇게 마지막 대화를 나눴던 장소 역시 성당의 어둑어둑한 1층 홀이었다. <아이 엠 러브>는 도덕을 넘어서는 것이 악이 아니라 어두운 게 악이라고 말하는 영화다. 그건 이 영화가 눈부신 생의 찬가라는 사실과 일치한다.

5. 色

안토니오와 본격적인 관계를 맺기 전, 엠마는 주로 빨간색 계열의 옷을 입는다. 첫 시퀀스인 저택의 가족 모임 장면에서부터 빨간 원피스를 입고 나온다. 안토니오가 만든 새우 요리를 먹을 때 역시 그렇다(그녀가 빨간 원피스를 입고 빨간 립스틱을 칠한 채 그가 만든 붉은 새우를 입안에 넣고 씹으며 탐닉하는 장면은 사실상 이 영화의 첫 섹스장면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안토니오와의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며 산레모를 처음 방문할 때 그녀가 걸친 옷도 주황색 원피스였다.

아마도 빨간색은 그녀 마음속 꾹꾹 눌러두었던 욕망일 것이다. 새로운 사랑을 떠올리며 딸이 스스로의 흥분을 생생하게 묘사한 편지를 읽고난 뒤 엠마가 꾸는 꿈의 마지막은 체리의 붉은 즙으로 흡사 피범벅된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손이었다. 그런 엠마에게 안토니오가 요리를 가르치면서 처음 두 사람의 육체가 맞닿게 될 때, 그들의 손에 들려 있었던 것은 불을 뿜는 토치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세상의 모든 색을 뒤덮어 무화시키는 도시의 건조한 눈 풍경으로 시작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겨울에서 시작한 영화는 곧 여름을 맞고, 엠마 역시 내면의 욕망을 밖으로 표출하고 또 실현한다. 그리고 안토니오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게 된 뒤부터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엠마가 더이상 붉은 옷을 입지 않는다. 심지어 이 영화는 극 후반부에서 과다출혈이 사인이라는 아들 에도아르도가 죽는 장면에서도 붉은 피를 단 한 방울도 묘사하지 않는다.

헤어스타일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극 초반 엠마의 머리는 길게 늘어뜨린 모양이다. 그러다 안토니오와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이행되는 단계인 첫 산레모 여행에선 긴 머리를 틀어올린 모습이다. 이어 두 사람이 섹스를 하고 나면 안토니오는 엠마의 머리카락을 잘라 단발로 만들어준다.

6. 肉

그리고 나를 온전히 매혹시켰던, 감각을 스크린에 육화하는 몇 가지 방식. 여기서 아웃 포커스의 표현력은 실로 경이롭다. 특히 원경의 아웃 포커스에서 인물들(베타와 앙가라드)이 다가와 근경의 인 포커스로 키스를 할 때 전달되는 그 놀라운 생기라니! (엠마가 안토니오와의 키스를 떠올리며 세면대의 거울 앞으로 다가와 웃음짓는 장면의 메커니즘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 구아다니노는 두 주인공인 엠마와 안토니오가 첫 키스를 하는 광경조차 아주 짧은 아웃 포커스로 처리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관객이 스스로 무엇을 본 것인지 잠시 의아해할 동안 영화는 짧은 무지화면을 거쳐, 집으로 돌아와 욕실로 달려간 엠마가 소변을 보면서 입을 막고 웃는 장면을 거울들을 통해 길게 늘어놓음으로써, 행동 자체보다 행동의 심리적 파장을 훨씬 더 선명하게 강조한다.

소파에서 낮잠에 빠진 엠마가 꾸는 꿈을 몽타주한 끝에 에도아르도가 깨우는 현실의 장면으로 돌아오고 난 뒤에도 꿈속 장면을 아주 짧게 한번 더 인서트함으로써 감각의 여진을 인상적으로 코멘트하기도 한다. 구아다니노는 감각의 혈관을 잇거나 꼬리를 자르는 방식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틸다 스윈튼의 연기와 존 애덤스의 음악이 얼마나 매혹적인지에 대해서도 쓰고 싶지만, 예정된 원고량을 이미 넘겼기에 그건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附

많은 사람들이 <아이 엠 러브>를 보면서 루키노 비스콘티의 <레오파드>를 떠올린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두편의 탐미적인 이탈리아영화들은 공통점이 적지 않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구아다니노가 의식적으로 이탈리아영화의 전통을 떠올렸던 것을 감안하면 그와 같은 연상은 지극히 자연스럽기까지 하다(심지어 탄크레디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두 영화 모두에 나온다는 점도 같다. 밀라노 출신인 비스콘티가 시칠리아를 무대로 한 <레오파드>를 만든 반면, 시칠리아 출신인 구아다니노가 밀라노를 무대로 한 <아이 엠 러브>를 연출했다는 점까지도 흥미롭다).

그러나 어쩌면 두 작품은 니노 로타와 존 애덤스의 음악만큼이나 다른 영화일지도 모른다. 대저택의 활짝 열린 창문에서 시작해 쓸쓸히 퇴장하는 인물의 뒷모습으로 끝나는 <레오파드>가 결국 스러져가는 것을 골똘히 응시하는 영화라면, 굳게 닫힌 창문에서 시작해 인물이 사라지고 난 빈 공간을 박력있게 제시하면서 끝나는 <아이 엠 러브>는 솟아오르는 것에 모든 관심을 쏟는 영화니까. 지난 몇년간 이토록 왕성한 생의 찬가를 스크린에서 마주한 적이 없었다. 최소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살아 있어서 행복하다.

이동진 영화평론가. 한해가 시작된 지 11일 만에 올해의 첫 걸작을 만났다. 아마도 2011년은 영화 운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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