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페셔널]
[프로페셔널] 관객이 광고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게 기술
2011-02-08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주)피피엘앤컴퍼니에서 PPL 업무를 맡고 있는 조승현 실장

PPL(product in placement). 마케팅 방법의 하나로 영화나 드라마 등에 기업의 특정 제품을 등장시켜 홍보하는 것. 설명과 달리 PPL은 단순하지 않다. PPL은 잘 쓰면 약이지만 못 쓰면 독이 된다. 전체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PPL로 충당하는 할리우드와 달리 한국영화에서 PPL은 아직 소품의 연장선상에 있다(물론 예외도 있다). 충무로에서 PPL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파트가 따로 없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제작팀, 미술팀의 소품 담당이 소품을 구하는 과정에서 PPL이 논의된다. 엄밀히 따지자면 PPL 대행사 피피엘앤컴퍼니의 조승현 실장은 영화인과 마케팅인 사이에 있다. 기업과 영화인 사이에서 PPL을 조율하는 역할인 만큼 ‘충무로에서 PPL은 무엇인지’를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피피엘앤컴퍼니(PPL & COMPANY)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가.
=진로소주와 LG싸이언 휴대폰을 고정 클라이언트로 두고 있는 PPL 대행 업체다. 해당 상품을 영화나 드라마에 노출시키는 일이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나 3~4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PPL 대행업체는 60, 70개 정도 있었다. 지난해 1월 방송법 개정으로 간접광고(PPL)가 전면 허용되면서 지금은 PPL 대행 업체가 100개 이상으로 늘었다.

-일을 시작한 건 언제인가.
=2001년에 방영한 김재원, 김효진 주연의 MBC 드라마 <우리 집>이 첫 작품이다. 그때 ‘SK텔레콤’의 PPL을 맡았다. 주인공이 사용하는 휴대폰은 모두 SK텔레콤에서 제공하는 기기를 사용함은 물론이고, TTL 매장, ‘밸런타인 이벤트’처럼 실제 기업에서 진행하는 프로모션 등을 그대로 방송에 노출했다. 영화는 정윤철 감독의 <슈퍼맨이었던 사나이>(2008)가 처음이다.

-PPL만 놓고 볼 때,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는 뭔가.
=기업 입장에서 노출되는 시점이 중요하다. 시점은 제품별로 다르다. 휴대폰, 노트북, TV 등, 전자제품은 수시로 신제품이 쏟아져나오는 까닭에 기업은 영화보다 드라마를 선호한다. <흑수선>(2001)을 할 때였다. 당시 새로 출시된 삼성애니콜 휴대폰이 영화에 소품으로 사용됐는데, 영화가 개봉하자 그 모델이 단종됐다. 반면 음료수, 주류, 식품류는 제작 기간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의 초코파이가 대표적인 예다. 진로소주와 함께 일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작업한 영화에서 진로소주는 어떻게 등장했나.
=<과속스캔들>(2008)의 경우 현수(차태현)의 집에서 나온 정남(박보영)이 감자탕 가게에서 일하는 장면에 등장한다. 박보영 뒤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참이슬) 오리지널 말고 프레시로 주세요’라고 큰소리로 주문한다. <황해>(2010)의 경우 배우 이민정씨의 참이슬 광고 패널이 시내버스 옆면에 부착된 채로 노출된다. 광고가 극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게 중요하다. 관객이 ‘광고’라고 인식하는 순간 그 PPL은 영화도, 광고도 실패다.

-PPL 계약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제작사가 해당 제품을 소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제안서를 보내오거나 우리가 기획단계에서 먼저 제안하거나. 영화는 대부분 전자의 방식대로 진행된다. 반면 드라마는 ‘PPL 대행사’와 ‘마케팅 프로듀서’ 그리고 작가 혹은 프로듀서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함께 논의한다. PPL을 위해 극중 직업을 비롯한 인물의 설정을 바꾸기도 한다.

-마케팅 프로듀서가 구체적으로 하는 일이 뭔가.
=한편의 드라마가 기획되고, 시놉시스가 나오고, 편성이 확정되면 마케팅 프로듀서는 시놉을 검토하면서 PPL을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을 체크한다. 그리고 각 기업에 현금 및 현물을 지원 요청한다. 가령 주인공이 커피 회사 사장인데, 제과점이 PPL을 제안해오면 인물 설정을 수정한다. 물론 혼자서 설정을 변경하지 않고, 드라마작가가 ‘오케이’해야 일이 진행된다.

-충무로의 경우 미술팀, 제작팀 협찬 담당이 PPL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PPL만 따로 책임지는 팀 혹은 인력이 없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영화제작사는 작품과 이야기가 먼저다. 처음부터 PPL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다. 무엇보다 PPL은 마케팅의 한 방법인데, 대개 영화홍보사는 주연배우가 정해지고 크랭크인이 들어가기 전에 영화에 붙는다. 아무래도 제한된 선 안에서 PPL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PPL을 잘 활용한 영화를 꼽으라면.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다. <쉬리>의 마지막 장면, 한석규씨가 김윤진씨가 남긴 음성 통화를 들을 때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라는 멘트가 뜬다. 통신사 모두 ‘소리샘’ 서비스가 있지만 이 영화를 본 관객은 ‘소리샘은 SK텔레콤’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위에서 언급한 <공동경비구역 JSA>의 초코파이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극중 네 병사를 잇는 중요한 장치로서 자연스럽게 기능한다. 이야기의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 제품의 이미지를 강하게 각인시키는 점에서 PPL을 잘 활용한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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