툰드라는 북위 60도 이상의 지역을 말한다. 지구 면적의 10%를 차지하는 광활한 땅이지만 겨울이면 기온이 영하 70도까지 내려간다. 이런 극지에서 1년간 살다온 사람이 있다. <최후의 툰드라>를 만든 SBS의 장경수 PD다. 장경수 PD는 러시아 시베리아 북서쪽에 위치한 야말반도의 촬영을 담당했다. ‘야말’은 그곳에서 순록을 유목하며 살아가는 네네츠 원주민 말로 ‘세상의 끝’이라는 뜻이다. 세상의 끝에서 돌아온 남자의 <최후의 툰드라> 제작기를 전한다.
-해마다 툰드라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러시아 툰드라 영구동토 아래의 천연가스 매장량이 세계 1위다. 지구 온난화로 땅이 녹으면서 메탄가스가 올라오니까 기후 변화 학자들의 관심사가 되었고, 2007년부터 논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원래는 환경문제로 접근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환경문제가 눈에 잘 보이지가 않더라. 학자들이 수년씩 연구해야 하는 문제였다. 그래서 툰드라 사람들의 모습에 주목했다.
-<북극의 눈물> <아마존의 눈물> 등 극장판이 나왔다. 처음부터 극장판을 염두에 두고 제작했나.
=내가 담당했던 야말지역은 러시아 당국의 허가를 얻기 힘든 곳이라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영화로 먼저 제작하자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아직 미디어 환경이 영화를 먼저 내보내고 방송을 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명품다큐’라는 타이틀의 작품이 많다. 높아진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 어떤 차별화를 구상했나.
=방송 나가기 전 시사회에서도 자꾸 <아마존의 눈물>과 비교했다. <아마존의 눈물>에서 좋게 본 부분이 있다. 인물의 디테일을 포착해서 내면으로 들어가려는 시도가 좋았다. 그런데 한국 다큐멘터리 PD들이 그런 연출에 대부분 익숙하다. 가급적이면 그 사람들의 삶을 쉽게 표현하기 위해 이야기로 많이 접근하려고 했다.
-툰드라 지역은 일반인에게 낯선 곳이다. 생생한 체험담이 듣고 싶다.
=체험담이 너무 많아서…. 출발하기 전에 인터넷을 다 뒤져서 준비를 많이 했다. 세수를 못할 것 같아서 물티슈를 가져갔는데 얼어서 쓸 수 없었다. 다음에는 물을 부으면 부풀어오르는 동전처럼 생긴 물티슈를 가져갔더니 현지인들이 너무 좋아하며 달라고 하더라. 러시아군이 썼다는 기능성 깔창, 핫팩도 준비했는데 영하 40도 이하로 내려가니까 소용이 없었다. 거기서 버티려면 현지인들 옷을 빌려 입으면 된다. 순록 털은 내부에 공간이 있다. 그래서 보온효과가 크다. 극한 지역에 대한 어떤 블로그를 보니 영하 50도 이하가 되면 인간이 만든 섬유가 소용이 없다고 하더라.
-솔직히 화장실 문제도 궁금하다.
=집 밖이 모두 화장실이다. (웃음) 볼일은 가능한 한 멀리 가야 하는 게 그들의 풍습이라 춤(네네츠족의 집)에서 2km 정도를 걸어가야 했다. 순록은 겨울에 염분이 부족하다. 사람 오줌을 되게 좋아한다. 사람이 춤에서 나오면 오줌 싸는 줄 알고 몰려든다. 볼일을 보다보면 순록 뿔에 치일 때도 있다.
-배우 고현정이 극장판에서도 내레이션을 맡았다.
=내레이션은 연기력있는 사람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툰드라가 대지모, 어머니의 땅이니까 여성이 했으면 했다. 자연스럽게 고현정씨가 떠올랐다.
-극장판에 방송 미공개 분량이 많이 첨가되었나.
=사실 고민을 많이 했다. 미공개 영상이 정말 많다. 그것만 60분으로 틀어도 재밌게 볼 수 있다. 결국 넣지 않는 쪽으로 결정했다. 제작진의 메시지는 TV 방송분에 있었다. 그걸 빼고 새로운 걸 선택하면 잃어버리는 게 분명히 있다. 극장판에 새롭게 들어간 분량은 10분 내외다. 영화의 질만 판단했을 때 이 선택이 옳다고 생각했다.
-꼴냐와 그리샤라는 아이들이 물고기를 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꽤 귀여웠다.
=촬영감독에게 꼴냐와 그리샤를 주인공으로 찍어주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물고기를 옮기는 장면은 촬영감독이 혼자 알아서 찍은 거다. 나중에 툰드라로 돌아갔을 때 촬영감독이 “뭐 하나 보여줄까요” 하고 씨익 웃더라.
-EOS 5D Mark-Ⅱ라는 DSLR를 사용했는데. 겨울에도 괜찮았나.
=EOS 5D Mark-Ⅱ로 촬영한 분량이 99%다. 배터리 보관이 관건이었다. 영하 20~30도만 돼도 방전되기 때문에, 배터리를 항상 품고 다녔다. 한컷 찍고 배터리 가는 작업을 반복했다.
-항공촬영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 아프리카에서 물소들이 달리는 장면을 본 적 있지 않나. 그건 물소들이 헬리콥터 소리에 놀라서 뛰는 거다. 툰드라에서 그렇게 하면 순록의 다리가 다 부러진다. 그래서 항공촬영에 자주 쓰이는 시네플렉스를 사용할 수 없었다. 결국 선택한 것이 모터 패러글라이딩이다. 패러글라이딩은 바람에 많이 흔들리기 때문에 촬영하기 힘들었다. CG로 화면의 떨림을 다 잡았다. 지금은 노하우가 생겨서 안 떨리게 찍을 수 있다. 툰드라 순록 행렬의 항공촬영은 우리가 세계 최초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