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끝났다. 역사상 가장 지루한 프로그램을 선보인 제61회 베를린영화제가 2월20일로 막을 내렸다. 소수의 영화에 모든 상을 몰아주며 심사위원들이 나름의 약정된 코멘트를 한 경쟁작의 라인업은 동의 가능한 수준이긴 했으나 이른바 말하는 세계 4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 토론토)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특히 여느 국제 게이영화제 같았던 파노라마 섹션은 평범하고 지루했다. 진보적이고 “젊은” 영화의 장이어야 할 포럼 섹션은 초점을 잃은 채 산만하기 짝이 없었다. 원래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위한 미니영화제 섹션이었던 제너레이션 섹션만이 여전히 견고하면서도 다양한 프로그래밍을 요란하지 않게 선보이며 찬사를 받았다.
베를린영화제는 지난 20년 전 내가 처음으로 다니기 시작한 ‘주요’ 영화제다. 나는 곧 그 도시와 행사를 사랑하게 됐다. 베를린영화제는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도시에서 열리는, 가장 효율적으로 잘 운영되는 영화제다. 다른 영화제와 달리 베를린영화제는 기계처럼 경직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이고, 관료제적인 운영에 매달리지 않는다. 영화제 자체가 이제는 너무 커버렸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영화제들도 비대해진 것은 마찬가지다. 영화제 행사 중 하나인 유럽영화 시장은 여전히 번성하고 있고, 영화제 스탭들에게 여전히 친절하고 쉽게 도움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프로그래밍은… 오, 프로그래밍!
외신기자클럽 동료인 스티븐 크레민이 최근에 지적했듯, 베를린영화제에 영화가 출품된다고 해서 더이상 영예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지난 십년간 영화제를 이끌어온 디터 코슬릭은 베를린영화제를 으르렁거리는 예측할 수 없는 곰(베를린의 도시 상징인)에서 집에서 기르는 귀여운 치와와로 변형시켰다. 1950년대에 출범할 때부터 베를린영화제는 항상 정치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히 정치적으로 올바를 뿐이다. 경력 관료이자 유럽영화 정치인인 코슬릭은 숙련된 쇼맨이자 유연한 서커스 리더이다. 그러나 그에게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프로그래밍 능력은 결여된 듯하다. 지난해 독일 언론은 베를린영화제가 “영원한 2등(칸 다음의)”이라고 비탄했다. 올해 독일 언론은 이제 베를린영화제는 “영원한 3등(베니스 다음의)”이며 그 밑의 다른 영화제와의 차이도 좁혀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수년간 물밑으로만 이야기해오다가, 드디어 독일 언론은 본격적으로 코슬릭에게 영화제의 장 역할만 하고 프로그래밍을 담당할 적당한 아트 디렉터를 따로 임명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코슬릭 지휘 아래 마지막으로 괜찮았던 2004년 이래 이런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명 감독들의 참여가 줄었고, 영화제는 방향과 초점을 잃은 듯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의 아시아영화 선정은 부끄러울 만큼 실패작이며, 한국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도 경쟁작으로 상영된 것이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본다.
베를린영화제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조처가 취해져야 한다. 공식 프로그램을 감독할 아트 디렉터를 선정하고, 현재 프로그래머 중 다수가 사퇴해야 하며 파노라마와 포럼 섹션의 구조를 재조정해야 할 것이다. 올해 영화제 기간 내내 코슬릭이 2013년 이후까지 계약을 연장할 것이다, 혹은 곧 은퇴할 것이라는 루머가 떠돌았다. 아마도 이 얘기들은 그저 루머로 끝나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베를린영화제는 스스로의 종말로 향하는 제4막 괴터데머룽( Gotterdammerung 신들의 황혼)을 맞이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