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자신을 재발명(혹은 재발견)한 전설적인 뮤지션이 내한 공연을 한다. 지금 환호성을 지르고 계실 마돈나 팬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주인공은 엘비스 코스텔로다. <노팅힐>의 감상적인 주제곡 <She>를 부른 그 뿔테안경의 중년 남자? 맞다. 하지만 <She>는 코스텔로라는 천재를 대표하기는 한참 무리인 노래다. 그는 지난 1977년 영국에서 펑크록 음반 ≪My Aim Is True≫로 데뷔한 뒤 지난 30여년간 쉬지 않고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남은 뮤지션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궁금한 게 하나 있다. 2월2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첫 번째 내한 공연에서 대체 코스텔로는 어떻게 30여년간의 음악을 정리해서 보여줄 것인가. 내한 공연 직전 캐나다 밴쿠버에 살고 있는 코스텔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에 오기까지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린 건가.
=글쎄. 초청을 이제야 처음으로 받아서? (웃음)
-당신이 공연하게 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런던의 앨버트홀처럼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아! 처음 들었다. (웃음) 근데 그곳도 앨버트홀처럼 사운드가 훌륭한 공간인가?
-음향시스템이 아주 좋다고 들었다.
=다행이다. 이번 공연은 밴드 없이 나 홀로 이끌어가는 솔로 콘서트다. 내 목소리와 기타 외에는 다른 악기가 없다. 그래서 오히려 더 다이내믹한 어레인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악기만 다루는 게 단조롭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그게 더 버라이어티할 수도 있다.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를 모두 사용할 거다. 물론 <노팅힐>의 삽입곡인 <She>도 부를거다. (웃음) 한국의 대중이 오로지 <She>의 주인공으로만 나를 인식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홀로 무대에 서는 이런 식의 솔로 공연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이건 한국에서의 첫 공연이다. 나를 소개하는 무대다. 밴드와 함께한다면 오히려 내 음악을 버라이어티하게 보여줄 수 없다. 물론 운이 좋아 다음에 또 한국에서 공연하게 된다면 오케스트라와 함께한다거나, 다른 방식의 공연도 해보고 싶다. 지난 32년간 만들어온 음악을 한번에 다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당신은 종종 ‘팝 사전’(Pop Encyclopedia)이라 불릴 만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 장르를 다 섭렵하며 변신해왔다. 77년 데뷔했을 때는 성난 펑크 록 뮤지션이었고, 80년대에는 뉴웨이브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후에는 재즈, 클래식, 알앤비, 솔, 컨트리 등 모든 장르를 거쳤다. 대체 어떻게 스스로를 재발명해올 수 있었던 건가.
=글쎄, 흠, 내가 스스로를 재발명해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직관을 따라 흘러왔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폴 매카트니처럼 젊은 날의 우상과 함께 곡을 쓰는 엄청난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껏 나는 300여곡의 노래를 만들어왔다. 텔레비전 삽입곡과 발레 삽입곡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모든 것을 정상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로 해냈다. 음악 학교 따윈 가진 않았다. 그저 새로운 모험이 매 순간 나에게 다가왔다. 그 덕분에 내가 어떤 일정한 경향에 발목을 잡히지 않고 지금껏 잘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영화에 곡을 빌려주거나, 종종 당신 자신으로 출연해왔다. 직접 영화를 제작하거나 당신이 아닌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스파이스 월드>의 카메오 역할 같은 건 잠시 잊어버리자.
=<스파이스 월드>. 그 영화 아주 재미있었는데. (웃음) 영화는 부업일 뿐이다. 직업에 따라오는 일종의 부상이라고 할까. 정말로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요즘처럼… 납득할 만한 이유없이 폭력이 가득한 영화적 경향을 싫어하는 편이기도 하고. 대신 내 노래를 이용하고 싶어 하는 영화인들과 일하는 건 좋다. 그럴 때마다 내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영화에 공헌하도록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다. 단, 영화에 사용되는 내 음악은 어디까지나 보조도구여야만 한다. 음악이 드라마를 영화로부터 뺏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건 말이 안된다.
-지난주에 그래미 시상식을 봤다. 믹 재거가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당신 역시 50대 후반 아닌가. 육체적인 힘을 어떻게 유지하며 음악을 만들고 공연하나.
=믹 재거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잖아! (웃음) 나도 그래미 시상식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재거의 공연은 정말로 초현실적으로 멋졌다. 그 무대에는 믹 재거 외 어떤 것도 없었다. 그저 진실한 에너지뿐이었다. 나에게는 3살 된 쌍둥이 형제가 있는데, 나 역시 여전히 건강하다. 매일매일 지금 같은 에너지를 갖고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에 감사하며 산다. 요즘 나에게 중요한 건 퍼포먼스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일도 재미있지만 역시 퍼포먼스를 하는 게 젤 중요하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내 음악을 어떤 식으로 쇼에 올릴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하나의 노래가 하나의 얼굴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나라마다 특별히 인기있는 노래가 있는 것도 재미있다. 한국에서는 <She>가 인기있지만 네덜란드에서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I Want You>가 인기있다. 둘 다 로맨틱한 노래지만 후자는 네덜란드답게 아주 어두운 부분이 있는 곡이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