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년간 인터넷이 미친 지대한 영향 중 하나는 중간상(中間商: Middlemen)의 변화다. 어떤 분야에서는 완전히 중간상이 사라져 생산자가 바로 소비자와 연결되었고, 또 다른 분야에서는 중간상이 하는 역할을 놀랄 만큼 바꿔놓았다.
가장 많이 바뀐 분야는 여행, 도서, 음악 분야다. 아직도 서점, 레코드 가게와 관광 회사가 있지만 이들은 아마존, 아이튠과 항공사의 자체 예약 사이트들과 편리함과 가격 면에서 경쟁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10년 전에는 작은 서점이 인터넷뿐만 아니라 대형 서점과 슈퍼마켓과의 경쟁 때문에 속속 문을 닫았다. 이제는 인터넷 쇼핑과 전자책과의 경쟁으로 대형 서점이 문을 닫고 있다.
그러면 인터넷의 이런 힘이 장기적으로 영화산업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한국에선 합법과 비합법적 인터넷 영화파일 다운로드와 VOD 서비스로 인해 DVD시장이 거의 사라졌다. 동시에 2010년에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 수는 증가했으며 박스오피스 규모는 6.5% 증가했다. 세계적으로 인터넷은 영화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 소규모 전문 서점이 그랬듯, 10여년 전 유럽에 있던 많은 작은 규모의 영화 판매사가 문을 닫았다. 이제는 세계의 대형 영화 판매사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아이튠즈 영화 스토어가 있다. HD 화질의 새 영화를 빌리는 가격은 500엔(약 7천원)이고 판매 가격은 2500엔(약 3만5천원)이다. 몇몇 고전영화는 300엔(4천원)에 빌려 볼 수 있을 뿐 살 수는 없다. 일본 영화 스튜디오들은 매우 일시적이고 조심스런 행보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의 미래란 한번의 클릭으로 언제나 어떤 디바이스로건 영화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직은 그렇게 될 때까지 한 세대 정도를 더 기다려야 할 테지만 말이다. 불가피한 미래의 변화를 막으려는 행동은 소비자들을 비합법적 소스로 향하게 만든다. 음악산업은 이미 이것을 뼈아픈 경험을 통해 배운 바 있다.
애플사에 자신의 신용카드를 등록한 1억6천만명이 마우스를 한번 클릭하는 것으로, 아니면 손가락으로 한번 스크린을 터치하는 것만으로 한국영화를 살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애플사가 영화 대여비의 70%를 저작권 소유자에게 돌려주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하루아침에 세계 영화산업 경제를 완전히 바꿔버릴 것이다.
<이웃집 좀비>(2009)를 연출한 오영두 감독의 SF영화 <인베이젼 오브 에일리언 비키니>가 일본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영화 제작비는 4300달러로 알려졌고 영화제 수상액은 2만5천달러였다. 아이튠즈로 전세계 디지털 배급이 가능하다면 국내 배급을 제외하고 외국 배급업자나 판매업자를 통하지 않고도, 디지털 배급만으로 그 영화는 쉽게 25만달러 정도는 벌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 한국영화가 급격하게 성장할 때 동시에 10개 가까이의 영화 잡지가 출간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타이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고 현재 똑같은 일이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나라들에서 영화 관련 저널리스트와 인터넷 사이트 관리자는 ‘시를 공부하는 할머니’나 ‘에일리언 비키니들’에게로 관객의 관심을 돌려주는 새로운 중간상이 될 것이다.
반면 일본 영화회사들은, 보상은 받지 못하고 이용만 당할까 두려워 영화들을 꽁꽁 숨겨두는 동안, 영화의 역사로부터 자신들의 자리를 스스로 지워나가고 있다. 한국은 현재 그런 폐쇄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다. 한국은 할리우드 회사들이 이런 영화의 미래를 전유하기 전에 세계 디지털 영화시장의 미래 속으로 돌진해 들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