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모범답안과 깜짝 수상 사이
2011-03-08
글 : 김용언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 영광의 얼굴들
왼쪽부터 크리스천 베일, 내털리 포트먼, 멜리사 레오, 콜린 퍼스.

올해 아카데미 배우 부문은 어느 정도 예정된 수순대로 흘러갔다. 이중 특히 남우주연상 부문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드림팀’에 가까웠으나, 이미 골든글로브와 영국영화아카데미 등을 비롯한 12개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던 <킹스 스피치>의 콜린 퍼스가 오스카를 거머쥐는 건 납득 가능한 결론이었다. 여우주연상 부문의 내털리 포트먼 역시 <에브리바디 올라잇>의 아네트 베닝의 견제를 물리치고 올해의 승자가 되었다.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 무대에 올라와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사람들 모두를 일일이 열거하며 감격에 찬 기나긴 소감을 털어놓았으며, <블랙 스완>을 통해 만나게 된 약혼자 벤자민 밀피예에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며 사랑을 고백했다. 데이비드 O. 러셀의 <파이터>는 남녀조연상 부문을 싹쓸이하며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들의 놀라운 앙상블이 영화의 핵심임을 입증했다. 멜리사 레오는 감격에 찬 수상 소감 도중 “fucking”이라는 단어를 ‘감히’ 사용하여 참석자들을 포복절도케 했고, 뒤이어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크리스천 베일은 “난 멜리사가 썼던 단어는 여기서 안 쓰겠다. 예전에 너무 많이 썼으니까”라고 재치있게 받아쳤다.

하비 웨인스타인

1997년 <잉글리쉬 페이션트> 이후 하비 웨인스타인은 영국풍의 시대서사극이 아카데미 수상 기회를 높일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한때 <펄프 픽션> <트레인스포팅> 등을 제작했던 그의 비즈니스 감각은 방향을 완전히 틀었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침몰시킨 1999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절정을 이뤘다. 한때 웨인스타인이 만든 영화는 아카데미에서 무려 249개의 노미네이션과 86개 부문의 수상을 거머쥐었다. 최근 미라맥스를 디즈니에 판 이후 하비 웨인스타인은 힘겨운 몇년을 보냈지만 이번에 완벽한 컴백을 확인했다. 미셸 윌리엄스 주연의 <블루 발렌타인>과 <파이터>를 비롯해 <킹스 스피치>가 그의 야심작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건 영화 비즈니스가 아니라 영화 제작이다.”

톰 후퍼

“어머니가 <킹스 스피치> 연극을 보고 와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네 다음 영화를 내가 찾아낸 것 같구나.’ 교훈인즉 어머니 말씀을 잘 듣자는 것이다.” 말더듬는 왕이 아카데미를 정복했다. 톰 후퍼의 <킹스 스피치>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등 핵심 부문을 모두 챙겼다. 최근 몇년 사이의 결과를 생각해보라. <허트 로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디파티드> <크래쉬> <브로크백 마운틴> 등이 작품상과 감독상을 차지해왔다. “역시 아카데미!”라는 비아냥을 면치 못했던 90년대까지의 결과와는 확연히 다른 선택이었다. 그런 점에서 올해 <소셜 네트워크>를 꺾은 <킹스 스피치>의 승리는 최대 이변에 가까웠다. 동시대의 시대정신과 점잖은 시대극 사이에서 아카데미는 후자의 손을 확실하게 들어주었다.

제임스 프랑코 & 앤 해서웨이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젊은 진행자라는 기록을 세운 두 청춘 스타는 무대 위에서 열심히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전국 TV시청률 기록을 보면 올해 시상식 시청률은 지난해보다도 7% 하락했다. 아름답게 차려입은 앤 해서웨이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는 열정을 보였지만 제임스 프랑코는 뻣뻣하게 카메라를 쳐다보며 유머 감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일관했다.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제임스 프랑코에게 “갑자기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 뛰어든 놀란 사슴 같은 태도로 로봇처럼 줄줄 대사를 읽기만 했다”고 혹평을 퍼부으며, “예전 진행자 빌리 크리스털이 무대에 등장했을 때 시상식장은 2시간 만에 처음으로 웃음으로 뒤덮였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본 중 최악으로 지루한 시상식이었다.”

2011년 아카데미 수상자

작품상 <킹스 스피치>
장편애니메이션상 리 언크리치 <토이 스토리3>
감독상 톰 후퍼 <킹스 스피치>
남우주연상 콜린 퍼스 <킹스 스피치>
여우주연상 내털리 포트먼 <블랙 스완>
남우조연상 크리스천 베일 <파이터>
여우조연상 멜리사 레오 <파이터>
각본상 데이비드 사이들러 <킹스 스피치>
각색상 아론 소킨 <소셜 네트워크>
촬영상 월리 피스터 <인셉션>
편집상 앵거스 월, 커크 박스터 <소셜 네트워크>
미술상 로버트 스트롬버그, 캐런 오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의상상 콜린 앳우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사운드 편집상 리처드 킹 <인셉션>
사운드 믹싱상 로라 허쉬버그, 게리 A. 리조, 에드 노빅 <인셉션>
시각효과상 폴 프랭클린, 크리스 코벌드, 앤드루 로클리, 피터 벱 <인셉션>
외국어영화상 <인 어 베터 월드>
분장상 릭 베이커, 데이브 엘시 <울프맨>
음악상(오리지널 스코어) 트렌트 레즈너, 애티커스 로스 <소셜 네트워크>
음악상(오리지널 송) 랜디 뉴먼 <토이 스토리3>
장편 다큐멘터리상 <인사이드 잡>
단편상 <갓 오브 러브>
단편애니메이션상 <로스트 싱>
단편다큐멘터리상 <스트레인저스 노 모어>

사진제공 REX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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