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엔딩 크레딧까지 꼭 봐야할 영화 <파이터>
2011-03-09
글 : 강병진

권투선수인 미키(마크 월버그)는 상대선수 대신 가족을 먼저 때려눕혀야 할 지경에 놓여 있다. 한때 최고의 권투선수였고 미키의 전담 트레이너인 형 디키(크리스천 베일)는 마약에 빠졌고, 선수생활 초기부터 매니저를 자처해온 엄마(멜리사 레오)는 자신의 손바닥에 아들을 가둬놓고 있다. 그리고 돈 버는 일은 하지 않는 누나들까지. 이렇게 대략 10명이 넘는 가족이 미키의 주먹으로 먹고산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의 훈련비를 마련하기 위해 노상강도에 나선 디키가 교도소에 수감된다.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는 미키에게는 가족을 떠날 절호의 찬스이자 가족을 배신해야 하는 상황이다.

라이트웰터급 세계챔피언이었던 미키 워드의 실화를 그린 <파이터>는 스포츠영화의 키워드를 모조리 갖고 있다. 잘나갔던 왕년의 시절에 대한 추억, 약물중독에 빠진 현재, 박진감 넘치는 경기장면 그리고 인간승리까지. 실제의 미키 워드가 미국에 정착한 아일랜드 출신 노동자 집안의 아들이라는 점도 스포츠 신화다운 소재다. 하지만 <파이터>는 자기와의 싸움 대신 가족과의 갈등을 더 큰 비중으로 그려낸다. 미키를 사랑하지만, 그를 통해 돈을 벌고 자신의 꿈을 이루고픈 엄마와 형의 처지는 상당히 독하게 묘사돼 있다. 특히 성질만 더러운 누나들이 미키를 에워싸고 있는 모습은 감독이 어깨를 으쓱할 법한 진풍경이다. 펀치를 주고받는 선수들의 모습보다도 경기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말과 행동을 더 세심하게 포착한 경기장면도 흥미로운 볼거리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꼭 엔딩 크레딧을 챙기도록 하자. 크리스천 베일의 연기력은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실제 형제의 모습과 비교할 때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