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제가 어릴 때 읽은 동화책에선 여주인공 이름이 ‘빨간 두건’이 아니라 ‘빨간 망토’거나 ‘빨간 모자’였는데요. 어떻게 된 거죠?
A. 이 이야기의 원형은 무려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워낙 오래전 유럽 각지에 퍼져 있던 민담이다보니 지역마다 시대별로 버전이 다릅니다. 똑같은 동화라도 샤를 페로 버전과 그림 형제 버전이 많이 다릅니다. 당연히 여주인공의 의상에도 조금씩 변화가 있겠지요. 여기선 편의상 ‘빨간 두건’으로 통일하도록 하죠.
Q2. 그럼 그 두건이 ‘빨간색’인 건 확실한가요?
A. 사실은 그 색깔 역시 후세에 덧붙여졌을 확률이 큽니다. 예를 들어 ‘빨간 두건’ 이야기가 처음 활자화된 건 샤를 페로의 1697년 동화책 <과거의 도덕적 이야기들, 마더 구스 이야기>입니다. 샤를 페로가 이 책에서 ‘빨간 두건’이라는 호칭을 명시한 건 사실이지만 더 오래전 민담을 추적하다보면 ‘황금빛 후드’라는 표현도 가끔 등장한다고 합니다. 황금빛 후드에는 마법의 힘이 있기 때문에 소녀를 먹어치운 늑대를 불태워버릴 수 있었다고 하네요.
Q3.‘빨간 두건’ 이야기가 책이나 영화로 자주 각색되었다고 들었는데요.
A. 명백하게 ‘샤를 페로(혹은 그림 형제) 다시 읽기’,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구할 수 있거나 각종 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적이 있는 작품 위주로 소개할게요. 안젤라 카터의 세계여성동화집 <여자는 힘이 세다>, 존 코널리의 우울하고 신비로운 동화 <잃어버린 것들의 책>에서 새롭게 재구성한 <빨간 두건>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닐 게이먼의 그래픽 노블 <샌드맨> 시리즈 중 2권 <인형의 집>에도 ‘늑대가 소녀에게 할머니의 살과 피를 먹인 다음 소녀의 옷을 벗겨 불태우고, 침대에 들어온 소녀를 잡아먹어버린다’는 끔찍한 초창기 버전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영화로는 먼저 닐 조던 초창기의 고딕 스타일이 돋보이는 <늑대의 혈족>(1984)을 꼽을 수 있습니다. 순결한 소녀 로잘린이 점점 성적인 욕망에 눈뜨고, 자신을 호시탐탐 노리던 늑대인간을 되레 유혹하며 자신 역시 그와 같은 동류가 되고자 합니다. 매튜 브라이트의 <프리웨이>(1996)는 섹시한 사이코 연쇄살인범(키퍼 서덜런드)과 성적으로 학대받는 불우한 10대 소녀(리즈 위더스푼)의 숨막히는 추적극입니다. <도베르만>으로 유명한 얀 쿠넹의 단편 <마지막 빨간 망토>(1996)는 <분홍신>과 <빨간 두건>을 무정부주의적으로 결합해 파격적인 폭력과 유머로 덧칠했고요. 데이비드 캐플란의 단편 <빨간 모자>(1997)는 소녀 역에 크리스티나 리치, 늑대 역에 무용수 티모르 보르타센코프를 캐스팅하여 대사없는 발레극 형식으로 사춘기의 섹슈얼한 환상을 표현합니다. 애니메이션 <빨간모자의 진실>(2005)은 불량소녀 ‘빨간 모자’, 이중생활을 즐기는 할머니, 덩치만 컸지 소심하기 짝이 없는 나무꾼, 지적인 특종전문기자 늑대가 <라쇼몽> 스타일로 등장합니다. 오시이 마모루가 각본을 쓰고 오키우라 히로유키가 연출한 애니메이션 <인랑>(1999)도 빼놓을 수 없죠. 위의 영화들이 성적인 암시에 집중한 반면, 이 작품은 무정하고 하드보일드한 늑대들의 세계에 초점을 맞추는 색다른 해석을 가미합니다.
Q4. 영화나 책 말고 뭐 다른 건 없나요? 너무 식상한데요.
A. 오, 남다른 취향과 감식안을 자랑하고 싶은 분이군요. 한국에선 아직 공연되지 않은 뮤지컬은 어떨까요? 로알드 달이 ‘빨간 두건’을 주인공으로 쓴 시를 바탕으로,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로 유명한 스티븐 손드하임이 작곡한 뮤지컬 <숲속으로>(Into the Woods)가 눈에 띄네요. 여기서 빨간 두건은 늑대와 용감하게 맞서 싸운 다음 늑대 모피 코트를 걸치고 의기양양하게 퇴장한다죠.